뼈빠지는 노동 삶을 짓누르다
신발도 없고, 옷도 너덜너덜하게 입은 한 꼬마 아이가 이방인을 발견하곤 다가왔다. 악수를 하자고 한다. 손은 온갖 오물 가득한, 진흙 범벅이다.
악수가 꺼려진다. 이상원 신부가 말했다. “위생이 엉망입니다. 이 아이도 이렇게 살다간….” 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계속 악수를 하잔다. 새끼손가락 끝을 간신히 그 조막 같은 손에 내주었다. 아이가 행복해했다.
# 텐트를 짊어지고 걷고 또 걷다
이번에는 거미와의 전쟁이다. 지난해 4월 방문했을 때는 지네와 개미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거미들이 우글거린다. 살충제를 뿌리고,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까지 피웠지만 소용없다.
이상원 신부가 사제관 숙소에 머무는 기간은 월 평균 1주일. 나머지 3주는 대부분 배낭과 텐트를 등에 지고 마을들을 걸어서 돌며 숙식을 해결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이 신부가 사목하는 마을은 70여 곳. 마을 대부분이 산속에 있어, 차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상원 신부가 걷고 또 걷는 이유다. “최양업 신부님을 닮았다”라고 하자, 이신부가 손사래를 친다.
“신자 있는 곳을 찾아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뭐가 대단한 일입니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 조금 유별나 보일 따름입니다. 그저 제가 있는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평신도들도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이신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지난해 방문했던 마을들을 하나씩 다시 방문했다. ‘가마꼴로’(Kamkolo) 마을에서 가바케(Kabakeh) 마을로. 다시 가바카(Kabaka) 마을을 거쳐 가라톤(Karathon) 마을로. 가니케이(Kanikey), 가본카(Kabonka), 가말로(Kamalo)…. 마을은 끝없이 나타났다. 대부분 림바(Limba)족 마을로, 한 마을에 30~100여 명씩 모여 산다. 각 마을 추장과 아이들 등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접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지 않았다. 보고 싶은 아이들 얼굴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이신부는 한국 신자들의 정성으로 지난 한해 동안 급성 말라리아 및 각종 질병을 앓는 어린이와 여성 100여 명을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중 약 10여 명이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했다. 말라리아, 장티푸스, 콜레라, 간염, 황열병, 코끼리 다리병, 에이즈….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 한국교회 도움으로 생명을 건지기도 했지만…
“원주민들이 병원에 가려면 먼저 도보로 5~7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4시간 이상 가야 합니다.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편도 버스비 1만 5000레온(한화 약 5000원)이 없어 병원 가는 것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가마꼴로 마을에서 만난 ‘아다마 방구라’(Adama bangura?62) 할머니. 1개월 전 산속을 걷다 넘어져 정강이 부분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치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따라 약초를 상처 부위에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처가 낫지 않고 계속 덧나기 시작한 것. 이신부가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일어나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온몸에 퍼져 있었다. 이신부가 돈을 주며 “빨리 병원에 가세요”라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젖는다. 병원에 가지 않겠단다. 할머니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프리카 여성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육아, 빨래, 식사 준비, 장작 마련, 농사 등 대부분 일이 여자들 몫입니다. 여자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매일 4~5km를 걸어가 물을 길어오고, 장작을 패고, 농사를 짓습니다. 하루 평균 걷는 거리가 20~30km에 달합니다. 남자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지만 여자 아이들은 그나마 교육도 시키지 않습니다. 평생 일만하다 죽는 것이지요.”
# 북치고 춤을 추며 찬양하다
또다시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갈증이 심했다. 이신부 숙소에서 끓여 온 물은 바닥이 났다. 이신부에게 “원주민들이 마시는 물을 마시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이신부가 펄쩍 뛴다. 이신부도 3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원주민들이 마시는 물을 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고, 늘 함께 생활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말라리아를 7번, 장티푸스를 6번 앓았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엄청난 고열과 오한을 혼자 며칠 밤씩 지새며 이겨내야 했다.
“다음 마을에서 물을 얻어, 휴대용 버너로 끓여 마십시다.” 3시간 후…. 가바케 마을에 도착했다. 100여 명이 모였다. 질병에 시달리고 음식과 옷이 없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수 km 떨어진 곳에서 길어온 소중한 물을 정성껏 끓여 감사히 마셨다. 이 마을에는 아직 우물이 없다.
추장이 소중하게 키워오던 닭 한마리를 잡았다.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한국에서 가져간 묵주와, 옷, 신발 등을 나눠줬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내렸다. 전기가 없으니 완전한 암흑이다. 손전등 불빛 2개에 의지해 미사가 봉헌됐다. 가난한, 하지만 순박한 이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2부 화음 무반주 아프리카 성가가 산속을 울린다. 춤을 추고 북을 치며 하느님을 찬양한다. 영성체하는 얼굴 하나 하나에 행복이 가득하다. ‘이렇게 기쁘게 미사 봉헌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하늘에선 별이 쏟아졌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느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이상원 신부 선교 후원
신한은행 110-077-255287 이상원 신부
문의 011-377-0518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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