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집에 가면 자장면이 있다!
지난해 11월 선교위해 도입 … 병사·군인 가족에게 명성 얻어
‘추억의 맛’ 위해 밀가루와 씨름 … 2% 부족함은 사랑으로 채워
“이번이 세 그릇째 아냐?” “저, 한 그릇 더 먹으면….”
뒤통수를 긁적이는 덩치 큰 병사를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던 송준명 신부(군종교구 소성본당 주임)가 국자 한가득 자장을 떠준다. 자장 그릇을 든 병사는 젓가락을 잽싸게 놀려 면을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며 또 자장면 행렬 끝에 달라붙는다.
군종교구 소성성당은 한달에 한두 번씩 자장면을 먹으려고 몰려드는 병사들로 불난 호떡집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시끌벅적해진다. 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올 때도 적지 않을 정도다.
“부대에서 나오는 자장면하곤 달라요.”
입안 한가득 자장면을 베어 문 병사가 손사래를 치다 침까지 튀긴다.
자장면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 날만큼은 병사들도 입대 전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어 갈수록 ‘소성루’(?)는 병사들 뿐 아니라 군인가족들 사이에서도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소성루’가 문을 연 건 지난해 11월. 본당 주임 송준명 신부가 병사들을 성당으로 이끌 방법을 고민하면서였다. 해답은 단순했다.
“군이란 데가 먹는데 품 들인 만큼 병사들이 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다른 종교에서는 먹는 것 외에도 이것저것 물량공세로 나오는데 우리로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때마침 가톨릭출판사에서 면 뽑는 기계를 본당에 기증하면서 본격적인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송신부가 직접 나서 목재와 건자재 등을 구해다 손수 망치질까지 하며 아예 성당 한켠에 그럴듯한 식당을 지었다.
물론 ‘주일 중국집’을 개업(?)하기까지가 쉬웠던 건 아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갈고닦아온 숨은 노력이 적지 않다. 처음엔 아무리 용을 쓰고 흉내를 내봐도 중국집에서 먹던 ‘추억의 맛’을 내기 힘들었다. 미리 자장면 재료를 사다 몇 번이고 만들어보고 먹어보기를 수십 차례, 주일 몇 시간을 위해 몇날 며칠을 밀가루와 씨름하고 나서야 그럴 듯한 맛이 나기 시작했다.
“2% 부족한 그 무엇을 사랑으로 채운 셈이죠.”
중국집 문을 열기 위해 소성본당은 금요일이면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한다. 본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장보기가 시작되고 토요일 오후면 송신부를 비롯한 그 주간 봉사자들이 둘러앉아 식재료를 다듬는 등 ‘작전 태세’를 하나하나 점검해나간다.
“오늘은 양파 몇 개나 깠을까?”
이제는 양파 까는 일에도 요령이 생겨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한꺼번에 수백 개씩 까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날을 거듭할수록 깊어져 가는 자신들의 ‘손맛’에 깜짝 깜짝 놀랄 때도 적지 않다.
이렇게 해서 성당에서 만들어내는 자장면은 맛을 본 병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갔다. ‘배달표’ 자장면에 길들여져 있던 병사들에게도 이내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되고 말았다. 자장면이 나오는 날이면 평소 300명을 약간 웃도는 미사 참례자가 30% 가량 늘어난다. 우스갯소리로 자장면 먹으러 성당에 나왔다가 얼떨결에 영세한 신자가 있을 정도다.
박경환(대건 안드레아, 26) 일병은 “성당을 찾는 병사들 가운데 반 이상이 신병들이지만 신자들의 따뜻한 배려로 푸근한 마음을 안고 돌아간다”면서 “힘든 여건에서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송신부와 본당 신자들이 한번에 만드는 자장면은 800그릇에 달할 때도 적지 않다. 병사들이 먹고 싶은 만큼 ‘무한 리필’되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웬만한 중국집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소성루’가 문을 여는 날이면 20㎏들이 밀가루 서너 포가 쉽게 동나고 자장 소스에 필요한 돼지고기와 양파 등 식재료비만도 40만원 가까이 든다.
매주 자장면을 내기가 힘들어 어떤 주에는 신자들과 어울려 앉아 김밥도 말고 라면도 끓인다. 자장면과 토스트를 좋아하는 신세대 병사들의 식성을 알게 된 것도 조그만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다보니 신자들 대부분이 자연스레 ‘병과’(兵科)하고는 전혀 다른 주방장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이나 바오로 사도가 오늘날 계셨더라도 소외되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셨을걸요.”
송신부의 사목 방향은 의외로 간명하다. 신자들을 위한 일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한다는 것이다.
주일이면 본당 신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병사들 앞에 선다. 장군이라고 예외 없다.
본당 사목협의회 고문 정경근(마리노, 육군 제3군수지원사령부 사령관)은 “손수 반죽하고 면을 빼 병사들과 나누면서 서로 격려하고 화합하는 장을 일궈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이렇게 모인 마음과 힘이 병사들에게 전해져 직·간접적인 선교에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자들의 마음씀씀이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일까, 17사단을 비롯해 61사단, 3군수지원사령부, 9공수여단, 항공대 등 인접한 6개 부대 장병들이 어울려 사는 소성본당은 확연한 색깔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본당 못지 않은 단결력과 내적 역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30% 가까이 늘어난 예비신자와 세례자 수도 이런 사목의 결실이다.
송신부는 “군이라는 곳은 병사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장일 수 있어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는 엄마와 같은 모습이 그 어디보다 필요한 곳”이라면서 “장병들이 군 복무는 물론 신앙생활도 잘 해낼 수 있도록 사랑과 힘을 모아나가겠다”며 신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요청했다.
사진설명
▶소성본당 주임 송준명 신부가 자장면을 나눠주고 있다. 800그릇에 달하는 자장면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신자들을 위한 일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한다는 송신부의 사목 방침으로 예비신자와 세례자 수가 30% 가까이 늘었다.
▶미사를 봉헌하러 온 병사들이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