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사우를 닮은 해병, 야곱을 닮은 수병
이곳 포항 충무대성당은 빨간 명찰의 해병대원과 하얀 명찰의 해군수병이 함께 어울려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다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이라 하나 두 녀석들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입대하기 전 주일미사라도 꼬박꼬박 챙겼던 녀석들은 해병, 수병할 것 없이 열에 하나도 되지 않기에 두 녀석들 모두 미사시간을 따분해하고 지겨워합니다.
그러나 강론시간에 팥죽색을 닮은 초코파이가 등장하면 분위기는 확 달라집니다. 그날 복음의 등장인물 이름 맞추기나 복음요약, 또는 간단한 교리 상식에 대한 대답을 잘 하면 상으로 주어지는 초코파이를 더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두 녀석들의 성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사우처럼 해병들은 신중함이나 치밀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손을 듭니다. 아직 문제를 다 내지도 않았는데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일어나 대답합니다. 목소리 큰 ‘우기기 대장’들 몇 명에게 상을 주어야 성당이 조용해집니다. 그러나 별루 내키지 않는다, 정답이 너무 어렵다 싶으면 아예 엎드려 잠을 청하는 뻔뻔함(?)과 대범함을 지닌 놈들도 있습니다. ^^
반면에 원하는 것이 생기면 끈기있게 그것을 쟁취해 나갔던 야곱을 닮은 해군 수병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합니다. 손도 잘 안 듭니다. 소란을 떠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대답할 ‘꺼리’가 생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럴듯한 개똥신학을 펴는 것은 물론이요, 미사 후에 수단자락을 붙들고 ‘왜 자기 대답이 틀렸는지 설명해 달라’며 고단수의 열정(?)을 보임으로써 기어이 상을 타내고야 맙니다. 상을 못 받고 돌아가면 삐쳐서 몇 주간 성당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계집애같은 놈들도 있습니다. ^^
우문현답
그날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배운 사람은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제의 강론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신자답게 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일’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먼저 눈높이 문제를 출제했지요.
“십계명을 다 외울 수 있다. 손들어!!” 에휴~ 성당 안에 송아지들만 모아 놓았는지 모두들 눈만 꿈뻑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모두 함께 큰 소리로 십계명을 서너 번 외고 난 후에야 본 문제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는 어느 계명을 어긴 것에 해당할까?” 역시 에사우를 닮은 씩씩한 해병,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망설임없이 대답합니다. “오륙칠팔구십번입니다.” “오륙칠팔구십번? 무슨 대답이 그러냐?”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지 말라’라는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목청껏 외치는 겁니다. 자세히 설명해 달랬더니 머뭇머뭇거리다 “에이~”하며 그냥 앉아 버리는 겁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게지요.ㅋㅋ
이번에는 한쪽 구석에서 “4번입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수병 한 녀석이 자리에 앉은 채로 옹알거립니다. “불효자 아들을 둔 부모님의 마음은 많이 아프십니다. 배운 것을 잘 실천해야 부모님이 기쁘시고 효도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다면 고생하시며 우리를 키우시고 가르치시는 부모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제법 그럴듯한 말빨(?)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우겨대는 통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십계명에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이 있다는 것과 ‘-하지 마라’라는 계명들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심어졌을 테니까요.
씩씩하지만 즉흥적이었던 에사우를 닮은 해병대원, 조용하지만 끈기있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던 야곱을 닮은 해군수병들과 함께하는 시간들…. 참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아! 시상은 어떻게 했냐구요? 모두들 평소보다 더 많은 초코파이를 먹고 갔지요.^^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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