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횡포로 수도생활 존폐위기
소음,환경 오염 등으로 정상적 수도생활 못해
시위,성명서 발표하며 조선소 건립 저지 앞장
“하느님 창조 질서 보존 위해 최선 노력 다할 터”
마산교구 내 세 곳의 수도원이 환경오염폭탄이라 불리는 조선 산업관련 공장들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소음.진동, 수질.대기 오염 등 종합적으로 퍼붓게 될 공장들의 공세를 어떻게 막을까.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기업의 횡포를 과연 이 수도자들은 어떻게 이겨낼까.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이 세상에 나와 피켓을 들어야하는 현실에 착잡함을 느끼며 트라피스트, 고성 가르멜, 올리베따노 세 곳의 수도원을 찾았다.
수정 트라피스트
노동과 기도. 단순한 삶의 봉헌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수도자들.
특히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에 위치한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엄격한 수도 규칙을 지키며 정진하는 엄률 시토회의 봉쇄 수도회다.
수녀원은 마을 앞 주거 용도의 매립지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존폐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수도원 사상 최초로 모든 수도자들이 봉쇄를 풀고 시위에 참여하기도 한 수녀원은 현재 현장에서 외부활동을 벌이는 세명의 수녀를 제외하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마산시와 주민대책위원회가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트라피스트 수도원장 장혜경 수녀를 수도원이 아닌 세상에서 만났다.
그녀를 만난 곳은 마산시 행정의 중심인 시청. 많은 사람들이 행정 업무와 민원을 위해 오가는 그곳에서 만난 장수녀는 몹시도 피곤해 보였고 지난 시위 탓인지 목마저 잠겨 연신 기침을 했다.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에 대해 얘기하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수녀원이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단체라고 우리를 욕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들을 각오가 돼 있어요.”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유행어처럼 장수녀는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 지적하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우겠다고 말한다.
“진리와 사랑을 버리고 수도 생활의 안녕만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수도원 간판을 내리는 한이 있어도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막막하지만 절망스럽지 않다고 초연한 표정으로 설명한 장수녀는 이번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서 수녀원 이전을 종용하기도 했지만 이곳 1000여 명의 주민들을 두고 저희만 쏙 빠질 수는 없어요. 우리가 쫓겨난다면 그것 자체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날 마산시 측은 토론회를 가질 것을 제안해 주민대표와 트라피스트 수녀원 대표가 참석했다. 하지만 마산시는 주민 보상에 관해 먼저 논의하자고 해놓고 시청 앞에 ‘주민 설명회’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아 주민대책위원회로부터 큰 반발을 사며 토론회는 무산됐다.
장수녀는 조선소 설립 저지를 위해 수도원 밖에서 활동하다보니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라고 한다. ‘이 사람 하는 말이 사실일까?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할까?’ 단순함으로 수도생활에 정진하던 장수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말을 바꾸고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세상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야 함을 깨달았어요. 수도원의 생존을 위협하는 조선소 건립 저지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생각이에요.”
장수녀는 이날 토론회가 무산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소 건립을 결사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건강 상태가 악화돼 창원 파티마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고성 가르멜 수녀원
가르멜 수녀원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굽이굽이 펼쳐진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양 옆으로 아름다운 강산의 모습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곳이다.
그랬다. 그랬었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이번에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에는 도대체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어 몇 번이나 지도를 다시 살폈다. 왜냐하면 아름다웠던 산과 초목들의 푸름은 온데간데없고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과 부지 마련을 위해 산들이 여기저기 깎여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12명의 수도자로 꾸려진 작은 공동체 고성 가르멜 수녀원. 마침 찾아간 시간이 저녁기도 시간이라 수녀원 앞에서 아름다운 기도소리를 감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쿵쿵쿵” “지잉 쾅” “드르륵 드르륵”
산울림 탓인지 유난히 더 크게 들리는 공사 현장의 소음은 아름다운 수녀들의 기도소리보다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여기서 더 이상 수도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성 가르멜 수녀원 원장 이명옥 수녀는 실제로 50m도 안 되는 옆에 공장부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근심을 드러냈다.
“작년 11월 말 처음 소식을 접하고 29일 상림면사무소에서 방문해 의견 물어와 반대의지 표명했어요. 10여 가구의 지역 주민들은 땅 소유자와 일가친척 등 친분이 두텁고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로 이루어져 쉽게 허락한 듯해요.”
지난 12월 24일 수녀 4명이 군수와의 면담을 가졌으나 개인 소유의 토지를 개인에게 파는 것이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차라리 수녀원에서 땅을 사는 것이 빠른 방법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수녀원 주변에는 이미 6곳의 공장지가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어 수녀원 이전이 현실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공장들이 대부분 개인 소유여서 보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트라피스트 일이 있은 후 기도한다고 힘내라고 전화했었는데, 그 일주일 후 저희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고민이 많아지다 보니 일과 생활도 흐트러지는 등 이수녀에겐 걱정이 많다.
“자연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 진행됐으면 해요. 모든 사람들이 나만 피해가 없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환경을 지키는 일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이수녀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해맑고 밝았다. 오히려 그 밝은 표정에 더욱 무거워진 마음으로 옆집 올리베따노 수도원을 향했다.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둑해진 저녁 무렵이었는데도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옆에 위치한 공장의 불빛으로 수도자들의 침묵의 시간을 방해받고 있었다.
먹을 복이 있었는지 수도원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반갑게 맞이하는 수도원장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올리베따노의 식사시간은 침묵 속에 이루어진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고 있는 중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공장들이 들어선 이후 수도자들이 기관지계통에 문제가 많아졌어요.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고. 수도원에서 기르는 작물들에도 피해가 있을까 우려됩니다.”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시작할 때부터 생태 공동체, 친환경공동체를 추구했다. 감나무 차나무 채소들을 직접 가꾸고 BMW 사업 등 유기 순환 농법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꿨다.
“성장과 개발의 논리, 신계발주의, 퇴폐적 자본주의라고 칭해질 정도로 돈이 된다면 자연과 인간성마저 짓밟는 풍조가 만연해있어요. 하지만 참 신앙인들의 자세는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인간의 신적 모성을 유지할 의무와 책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신부는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더 신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반생명적 공장들이 들어서며 수도원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수도원은 지난 20여 년간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자연과 생명과 연대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생명의 문제에 소명의식을 갖고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가는 수도자들. 비록 험난한 현실이 삶에 십자가를 지우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듯 보였다.
하느님은 과연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고 함께 하실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의 어려운 현실을 알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이영근 신부의 말을 뒤로하고 수도원을 빠져나왔다.
사진설명
▶고성군 상리면에 위치한 고성 가르멜 수녀원(왼쪽 점선) 전경. 수녀원과 불과 50m 거리를 두고 부지를 마련한 (주) 성진(오른쪽 점선)은 이곳에 환경오염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조선 기자재 공장을 유치할 계획이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인근 불법 조선소 건립을 반대하는 수도자들과 지역민 등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법제처 정문에서 조선소 건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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