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린다‘나-이웃-지구’를
공정무역 통한 ‘착한 상품’
제값에 사는 ‘윤리적 소비’
지난달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전 세계적으로 ‘착한 초콜렛’ 붐이 일었다. 초콜릿 뒤에 붙은 캐치 프레이즈는 ‘친환경적이고 또 윤리적인 관점에서 생산된 초콜릿이 지구촌을 더 살기 좋게 만든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공정무역’(fair trade)’을 통해 차별화된 ‘착한 초콜릿’ 구입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든 캠페인이었다.
공정무역은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환경친화적 제품을 제값에 사는 윤리적 거래를 말한다. 1950~60년대 유럽에서 사회운동의 하나로 태동한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공정한 가격 ▲건강한 노동 ▲친환경 유지 ▲생산자들의 경제적인 독립 등을 전제로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이 공정무역을 바탕으로 한 ‘착한’ 혹은 ‘윤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경제활동들이 속속 눈에 띈다.
‘착한(윤리적) 소비’는 인간과 동물, 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을 사지 않고 공정무역에 의한 상품을 구입하는 새로운 소비자 운동이다.
제3세계 농민에게 정당한 수익을
특히 시장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제3세계 농민들에게 정당한 수익을 돌려줌으로써 그들의 자립을 돕고 윤리적인 소비행위로 책임을 나누는 소비 문화로서, 우리 사회에서도 점차 움트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유명백화점에서는 공정무역상품과 재활용상품 등을 판매하는 에코숍을 열었고,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대형할인마트도 생겨났다. 한 대기업에서는 재활용 용지 등을 활용한 생활용품 브랜드도 출시하고 한창 홍보 중이다.
또 비영리 시민단체 아름다운가게는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네팔 커피 판매량을 판매 1년만에 두배로 끌어올렸고, 한국생협연합회와 각종 시민, 여성단체들도 공정무역 제품 판매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소비 활동은 무엇보다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의식의 확산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올바른 소비 자체만으로도 빈곤층을 돕고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세우는 또다른 변화인 것이다.
수년전, 우리는 세계 유명 스포츠브랜드들이 제3세계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해 축구공과 운동화 등을 만들고 엄청난 이익을 올려왔던 폭로사건을 기억한다.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만드는데만도 1200번 이상의 바느질을 해대지만, 하루 온종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이들이 받는 일당은 200~300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가깝게 우리 일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근래 국내에서도 커피시장이 급성장했다. 2005년 세계공정무역연합 통계에 따르면 세계 커피시장도 97년에 비해 두배 이상 확대됐지만, 생산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전체 이윤의 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커피값이 수백원에서 수천원으로 올라도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 생산자와 노동자들의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가격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정당한 보수와 수입 분배에 대한 권리에 관해 “보수는 노동관계에서 정의를 달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은 물론 노동조건과 공동선을 고려해 본인과 그 가족의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제공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제 신자들이 늘상 지니고 있는 각종 성물조차도 알게 모르게 비윤리적이고 비공정한 과정을 거쳐 들어온 제품들로 채워져간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미국 유명 대성당 등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중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물을 팔았다는 고발로 적잖은 파문을 겪은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 노동인권 단체인 ‘전국노동위원회(NLC)’는 지난 11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다.
국내 한 성물판매업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각 성당 등에서 유통되는 성물이 이탈리아 등의 유럽에서 수입돼 오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 대부분은 중국에서 싼값에 만들어진 조악한 제품들”이라고 토로한다. 물론 모든 물건이 불공정 생산과 거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여러 판매단계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맨 첫 단계에서 생산자들이 형편없는 임금을 받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생산자-소비자 공동선을 향해
이러한 현실에서 ‘착한 소비’는 현대인들의 소비문화 흐트러진 소비문화를 정화시키는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착한 소비’는 궁긍적으로 ‘나’와 ‘이웃’ 그리고 ‘지구’의 공생을 위한 소비다. 인간다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대중의 참여도다. 세계공정무역연합에 따르면 영국국민의 86%, 벨기에 68% 스웨덴 64%, 네덜란드 62%의 시민들이 공정무역상품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해 전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성인 중 공정무역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한 응답율은 3% 수준에 머물렀다. 단 공정무역에 대해 설명한 후 구매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9.6%가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소비문화 정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더 많은 더 빠른 소비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소득 집중의 심화, 지구환경의 파괴 등을 발발시켜왔다. 지난 2006년 녹색연합과 국민대가 공동으로 펼친 조사에서도 국내 성인 응답자의 55%가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소비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문화의 복음화’ 이론 정립과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제지상주의, 소비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며 “윤리적 소비의 대상은 농산물, 공산품 등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 교육 등의 전반에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착한 소비’는 바로 생산자는 소비자를 생각하고, 소비자는 생산자를 생각하는 공동선을 향한 ‘문화’이다.
◎착한 소비는 이렇게…
교회 내 우리농직매장 등 찾아
먹을거리부터 착한 소비 실천을
주부 김은영(레지나, 41)씨는 일주일에 한번은 서울 명동을 찾는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위치한 우리농직매장에서 먹거리를 사기 위한 발걸음이다.
남편을 위한 커피와 섬유 수공예품을 사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가게에 들른다. 어쩌나 일반 수퍼마켓을 가더라도 수입농산물은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다. 수입품이 아무리 좋고 안전하더라도 수입되는 과정에서 그만큼 에너지를 더 낭비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김씨의 생활에서는 ‘조금 더 귀찮더라도’ ‘조금 더 비싸게 주더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 대가가 생산자에게까지 전달되는 유통망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속속 늘어가고 있다.
현재 가톨릭교회 내에서 ‘착한 소비’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는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우리농직매장’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우리농매장은 경제 논리가 아닌 생명과 환경, 바른 먹거리 보급이라는 차원에서 펼쳐진다. 특히 이러한 노력은 신자는 물론 매장 인근 지역주민들의 생활습관을 친환경적으로 바꿔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평가다.
‘착한 소비’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는 각종 한국공정무역연합(fairtradekorea.com), 한국생협연합회(icoop.or.kr), YWCA(www.ywca.or.kr),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 여성환경연대의 주요사업인 페어트레이드코리아(ecofairtrade.co.kr) 등 다양하다. 이들 단체는 근본적으로 ‘더불어 살기’를 표방하며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고 나선다. 또 이들은 소비자들이 같은 가격의 제품을 살 때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독려할 뿐 아니라 각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각 단체 관계자들은 “착한 소비는 결코 어렵거나 나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이뤄지는 개념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조금만 생각해 활동하면 된다”며 “되도록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고, 특히 재활용품 사용과 기증에도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설명
▶서울 명동 우리농직매장
▶우리농직매장에서 장보는 주부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