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땀 피 얼을 배운다
칼바람 헤치며 6.1㎞ 걸어 성지 도착
도보 순례하며 부족했던 신앙 재충전
■ 60주년 기념 ‘도보성지순례’
지난 2월 23일 오전. 충남 천안시 유량동 태조산 등산로 입구는 대전교구 신자들로 북적였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기습 추위와 산자락에서 불어 내려오는 칼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이곳을 찾은 신자들은 줄잡아 1200여 명.
대전교구가 설정 60주년을 기념하며 마련한 첫 도보성지순례의 주인공들이다.
교구 설정 60주년 주제인 ‘기억하여 행하여라’처럼 이곳을 찾은 신자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산을 오르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이제 마음을 모아 자신들도 스스로 걸으며 순교자들이 이뤄놓으신 신앙의 업적을 본받고 ‘행하고자’ 마음을 모았다.
1200여명의 신자들이 한 걸음으로 향한 곳은 교구 성거산성지.
충남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 성거산 자락에 자리한 성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최천여(베드로)·종여(라자로) 형제, 고요셉을 비롯한 74기의 유해가 두 곳의 줄 무덤에 나눠져 묻혀있다. 또 인근 소학동 지역은 박해시대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당시 니꼴라 깔래 강 신부를 비롯해 페롱 신부, 뮈텔 주교, 두세 신부, 베르모렐 신부가 숨어 지내며 사목하던 곳이다.
신자들은 이날 오전 9시30분 태조산을 출발해 성불사 갈림길, 유왕골 고개, 걸마고개, 만일고개 등 6.1km의 순례 길을 지나 성지에 도착했다. 손이 절로 주머니로 들어가는 추위도 신자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손에 손에 묵주를 들고 산길에 들어선 신자들은 교구의 주보성인인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를 위해, 그리고 옛날 어느 때 이 길을 걸었을 신앙 선조들을 위해 기도를 봉헌했다.
최계광(야고보·입장본당)씨는 “성거산성지에는 자주 가봤지만 이렇게 동료신자들과 함께 걸어서 순례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입장본당 신자들과 교구 신자들의 일치를 위해,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성당 봉헌식이 잘 치러질 수 있도록 기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열 살, 여덟 살 아들?딸과 함께 순례에 참가한 이미혜(엘리사벳)씨도 “이렇게 많은 신자들과 함께 순례하며 기도할 수 있어 은총을 듬뿍 받는 느낌”이라며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에 앞으로도 많은 신자들이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출발 한 시간 전 태조산에 도착해 순례에 나서는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격려한 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순례에 동참하는 여러분들의 얼굴은 세상의 어떤 귀한 것보다도 맑고 빛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지금 우리의 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춥고 가난하고 배고팠던 선조들의 순례여정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례에 임하자”고 당부했다.
교구의 60주년 기념 도보성지순례는 이날 태조산~성거산성지 순례를 시작으로 앞으로 일곱 차례 더 열린다. 3월 8일과 9일에는 각각 공세리성당~신평성당~솔뫼성지, 솔뫼성지~합덕~신리~여사울성지 구간에서 순례가 열리며 3월 29일에는 다락골줄무덤에서 갈매못 순교성지 간 26.5km 구간에서 도보순례가 마련된다.
도보성지순례 마지막 행사는 6월 15일 장태산휴양림 입구 주차장에서 지방리성지 간 10km 구간에서 열릴 예정이다. 도보성지순례 일정은 교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신청은 전화와 교구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문의 042-630-7761
■ 교구 설정 60주년 여정
대전교구가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념하며 걸어갈 여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성지다. 교구 기념행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도보성지순례’와 ‘일일문화피정’은 교구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통틀어 순교의 못자리라 일컬어지는 ‘내포’지역 성지에서 열린다.
교구 대부분의 지역이 순교지인 동시에 신앙공동체가 집단을 이뤄 생활하는 교우촌이었고 방인사제들이 태어난 보금자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60주년을 맞이한 교구가 이들 성지로 눈을 돌린 것은 그동안 신자 수 증가에 따라 본당 중심 사목에 치우쳤던 모습을 성찰함과 동시에 순교자들의 땀과 피와 얼이 스며들어 있는 성지의 중요성을 대·내외적으로 깨닫고자 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
2월 23일 첫 걸음을 뗀 ‘도보성지순례’는 새로운 순례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목적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내포지역 성지이지만 대부분의 순례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현실. 교구가 여러 차례 답사를 거쳐 마련한 여덟 차례의 도보코스는 향후에도 많은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체험하며 걸을 수 있는 순례 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4월 12일부터 11월 9일까지 교구 내 8개 성지에서 열릴 ‘일일문화피정’ 또한 순례문화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일일문화피정은 도보순례를 통해 다진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다. 피정에서 마련되는 미사와 강의(강론), 기도, 심포지엄, 공연 등은 각 성지만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특성을 십분 살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각 성지 피정은 ‘평신도 사도직의 뿌리’, ‘무명 순교자의 영성’, ‘가정의 성화’ 등 특화된 주제들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의 외적 성장은 장밋빛 미래를 예측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적·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도 남겨놓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교구가 설정 60주년을 맞아 성지를 중심으로 펼치는 기념행사는 순교신앙을 통해 신자 개개인이 복음으로 재무장하자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뜻 깊다.
순교신앙을 통한 재복음화와 이를 밑바탕으로 한 복음화와 사회복음화를 향한 교구의 올 한 해가 기대를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일일문화피정’ 일정
일시/장소/주제·프로그램/문의
·4월 12일(토)/여사울성지/주제 : 평신도 사도직의 뿌리. 프로그램 : 개회미사, 특별강론/041-334-7860,www.yeosaul.or.kr
·4월 26일(토)/성거산성지/주제 : 교우촌의 발자취를 따라, 프로그램 : 개회미사, 성지관련 프로그램/041-584-7199, http://sgms.zerois.net
·5월 24일(토)/해미성지/주제 : 무명 순교자의 영성,프로그램 : 십자가의 길(순교자의 길 묵상), 특별강론, 파견미사/041-688-3183, www.haemi.or.kr
·6월 7일(토)/신리성지/주제 : 교회의 날, 프로그램 : 특강, 미사, 체험행사 또는 성지관련 심포지엄/041-363-1359,www.sinri.or.kr
·8월 15일(금)~16(토)/솔뫼성지/주제 : 기억하여 행하여라, 프로그램 : 청소년 야누스제(축제미사, 성극공연, 교구 설정 60주년 역사 영상물 상영,축하공연, 각 지구별 발표 등)/042-623-7520,http://solmoe.or.kr
·9월 6일(토)/공세리성당/주제 : 교회 일치의 날, 프로그램 : 미사, 성체거동 및 행렬, 하나됨을 이루는 국악공연 및 박물관 기획 전시/041-533-8181,http://gongseri.yesumam.org
·9월 27일(토)/공주황새바위/주제 : 성인의 날, 프로그램 : 순교자들과 함께 하는 시작기도, 미사, 황새바위 순교자와 함께 하는 묵상, 어울림 한마당/041-856-3923, www.hwangsae.or.kr
·11월 9일(일)/다락골성지/주제 : 가정의 성화, 프로그램 :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성당 축복미사/041-943-8123, www.daracgol.or.kr
사진설명
▶태조산 등산로를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도보성지순례 참가자들.
▶도보성지순례 참가자들이 순례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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