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유다 세밀한 심리묘사 돋보여”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유다는 예수님을 체포하러 함께 온 무리들과 이렇게 약속했다.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유다는 예수님께 인사하고는 입을 맞추었다.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의도를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마태 26, 47~56).
이 그림은 예수님이 체포당하기 직전 유다가 입을 맞추려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예수님과 유다는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기 싸움이라도 하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이 입맞춤 후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고 온갖 고난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다.
유다는 당시까지 결코 그려진 적이 없는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인데, 스승을 팔아먹은 악의 화신처럼 보이며, 미련하고 욕심 가득한 얼굴이다. 반면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바로 그 분의 모습인데 어리석은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꾸지람, 연민, 엄격함 등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리상태가 보이는 듯 하다.
이들의 주변에는 횃불을 치켜든 병사들, 그리고 창과 칼,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로마의 군사들이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14세기를 전후하여 활동했던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조토는 성경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을 마치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사건인 양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으며, 바로 이 장면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고대 이후 첫 작품에 속한다.
이 그림이 있는 곳은 이탈리아 북부의 파도바라는 도시에 위치한 스크로벤니 소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이다. 스크로벤니는 이 소성당을 소유한 가문의 이름인데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고통받는 구두쇠로 그려진 사람이 바로 이 성당을 지은 엔리코 스크로벤니의 아버지라고 한다. 저승에 간 부친의 구원을 위해 성당을 지어서 성모님께 봉헌한 것이다.
재작년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40도가 넘는 여름이었다. 20명으로 입장이 제한되었기에 우리 팀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우리는 입구에 마련된 찬바람이 씽씽 나오는 대기실에서 30분 이상 관련 비디오를 보면서 몸을 식혀야 했다. 이런 융숭한(?) 대접은 방문객을 위해서 베푸는 서비스는 물론 아니다. 그것은 소성당 내부에 있는 조토의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려진 조치이다. 많은 인원이 더운 여름에 한꺼번에 들어가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그림에 손상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성당은 사방의 벽면이 성모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생애 그리고 인간의 덕행과 악덕이 무려 55 장면으로 나뉘어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필자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 관람객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예술작품 앞에서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을 직접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으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이 있지만 이렇게 관람객의 체온을 식혀서 입장시키는 곳은 흔치 않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이렇게 체온조절까지는 아니지만 인원제한과 시간제한을 두는 곳, 혹은 철저한 예약제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 많이 있으며, 전시장에 온도계를 설치하여 예술품에게 적합한 최적의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이 같은 철저한 예술품 보호정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탈리아를 비롯한 선진 국가에서는 수백년, 수천년 된 건물이나 예술품들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 화재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 실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잘 하고 있으려니 믿고 있었는데 그곳에 노숙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라면을 끓여 먹고, 소주잔을 기울였으며, 생리현상까지 해결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가 그렇게 방치되고, 유린당하고, 무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실 후 잔해를 쓰레기로 처리했다는 뉴스는 더 기가 막혔다. 불에 탄 조각이라도 그것은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문화재이지 쓰레기가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는 능력도, 개념도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숭례문을 계기로 문화재 관리와 보호는 다시 기획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 그토록 무심하게 버려졌다가 마침내 불에 타 사라지게 된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후일 것이다.
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가톨릭신자들에게 조토는 흔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를 담은 이탈리아 아시시성당 프레스코화 작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생전에도 천재성을 높이 평가받은 인물이었다. 시인 단테는 그의 대작 ‘신곡’에서 조토에 대해 극찬했고, 작가 보카치오도 명저 ‘데카메론’에서 최고의 화가로 묘사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아시시 뿐 아니라 로마와 피렌체, 나폴리, 파도바 등지의 수많은 성당을 프레스코화와 템페라 패널화로 장식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작품의 진위여부와 연대 확인에서 논란이 있기도 하다. 말년에는 피렌체시 건축의 총괄 책임을 맡아 피렌체 두오모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의 종탑을 설계하기도 했다.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최전성기를 보인 ‘프레스코화’는 석회에 모래를 섞어 발라 채색하는 회화방법.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 지금까지도 색상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벤니가(家) 소성당 프레스코화는 25여 년의 복원과정을 거쳐 지난 2002년부터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됐다. 이 프레스코화는 흔히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대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최후의 심판’과도 비교되곤 하는데, 미켈란젤로가 생애 두차례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다면 조토는 단 2여 년만에 이 프레스코화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품제목 : '유다의 입맞춤', 조토,1303~05, 150×140cm, 프레스코 벽화,파도바, 스크로벤니 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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