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는 늘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생일이면 꼭두새벽부터 기도에 여념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오랜 기간 동안 물한모금 못 드시고 병으로 누워계실 때 늘 자식들 생일을 못챙겨주신 걸 안타까워 하시는 듯 했다.
지난해 6월 어머니는 두 차례나 심장이 멎었다가 심폐소생술로 다시 소생하셨었다. 세 번째 심장마비가 오고 선종하셨는데, 장례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고향땅 선산에 어머니를 모시면서, ‘어머니가 내 생일을 보고 가시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늘 곁에 있어주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주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정말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다. 자식이지만 대신 아파해드릴 수도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중환자실 밖에서 밤을 같이 지새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내내 가슴저리고 먹먹한 심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며칠 후 방정리를 하는데 속옷이며 유품들이 모두 깨끗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15여 년을 누워만 계셔서 예쁜 옷 한번 입어본 적 없고, 좋은 물건 한번 못 써보신 흔적이었다. 곱디 고운 한복이랑 옷들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기저귀도 좋은 것으로 많이 사다뒀는데 한동안 기계로 대소변을 뽑아내 그것조차도 전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가 선종하시기 직전, 나는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해야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실까 고민했었다. 그때 평소 어머니의 원의대로 난치병 아이들을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남의 집 자식도 친자식처럼 챙겨야 직성이 풀릴 만큼 따뜻한 분이셨기에 그 말씀에 아마 기쁘게 눈을 감지 않으실까. 어머니도 내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아이들 수술을 돕겠다는 소리에 아주 밝은 모습을 보이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생전에 모아둔 돈에 내 정성을 더 보태 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한 수술기금을 어머니가 머무시던 병원에 기부했다. 자식들이 준 용돈을 스스로를 위해서는 쓰지 않고 푼푼이 모아 미처 쓰지 못하고 남기신 돈을 아픈 아이들을 위해 쓴다면 더더욱 기뻐하시리라.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체온이 ‘0’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저 ‘사랑한다’는 말밖에 해드릴 것이 없었다.
이제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 멀리 계시지만 ‘어머니’란 이 세마디는 여전히 내게 너무도 큰 힘과 위안처로 남아있다.
특히 어머니가 강조하시던 말씀도 생생하게 내 곁에 머무른다. 어머니는 늘상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살이에서 늘 예쁜 것만 보려고 노력하고, 말도 가급적 아껴하라는 일상에서의 충고들이 새록새록 되새겨진다. 항상 자만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가진 것을 나눠야 한다는 것도 어머니가 항상 가르쳐주신 것이다. 돌이켜보건데 우리 어머니는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