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파하며 늘 사랑하겠습니다
2006년, ‘아시아 교회가 간다Ⅱ’ 기획 취재를 위해 필리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리 저리 뛰어 다니다 보니 어느 덧 시계는 오후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허기가 느껴졌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한 피자집에 들르게 됐다.
그곳에서 대구대교구의 한 사제를 ‘우연히’ 만났다. 학업을 위해 잠시 필리핀에 머물고 있던 사제였다. 만약 피자가 먹고 싶지 않았거나, 조금만 늦게 허기를 느꼈더라도 만나지 못할 인연이었다.
우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대구대교구의 사제가 ‘우연히’ 떠오른 생각에 따라, 그 역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사제를 소개시켜 준 것.
“얼마 전에 이곳에서 우연히 한 사제를 알게 됐습니다. 꼭 소개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난감했다. 난 이튿날 한국으로 돌아올 일정이었다. 이국 땅에서의 마지막 남은 하루. 관광을 하고, 쇼핑도 하며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상원 신부를 만난 것은 그날 저녁 필리핀 외곽의 한 한국 교포 가정에서였다. 2년째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신부는 휴가차 필리핀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작은 키에 짧게 깎은 머리, 단단한 근육, 까만 피부. 강한 인상이었다.
그 강인함에서 오히려 서글픔이 느껴졌다. 험한 땅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까. 그것도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곳에서….
이신부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과는 인연이 거의 없다. 어릴 때 필리핀에서 살다가 레골레토 수도회에 입회, 사제로 서품된 탓에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지낸 탓에 한국어도 어눌하다. 한센병을 앓아 소록도에 살던 부모님도 모두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나마 몇 되지 않던 작은 어머니 등 친척도 최근에 모두 돌아가셨다. 당연히 후원회도 조직되어 있지 않다. 수도회에서 나오는 용돈은 월 5만원. 이쯤 되면 맨몸으로 사목한다는 표현이 맞는 셈이다.
이상원 신부라는 이름이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이신부는 그동안 한국에서는 얼굴 없는 사제였던 것이다. 안타까웠다. 한국에 돌아온 후 이신부의 삶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신부가 사목하는 시에라리온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결실이 ‘아! 아프리카’ 기획 취재로 이어지게 됐다. 기사를 쓰면서 ‘글’이 얼마나 ‘느낌’을 따라가지 못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된데는 나 자신의 한계가 가장 컸다. 글로 옮기고 나니 막상 아프리카에서 몸으로 느꼈던, 체험의 생생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읽고 또 읽어도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자고, 먹고, 춤추고, 노래했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상원 신부의 땀과 원주민들의 아픔과 눈물 또한 생생하게 전하지 못했다. 그 간극은 독자들이 스스로의 혜안으로 메꿔주길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아프리카 취재가 혹시라도 바닷가의 작은 모래알만한 열매라도 맺게 된다면 그것은 많은 호응을 보내주신 모든 독자분들의 몫이다.
눈이 내린다.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두 손을 모아 본다.
“주님, 같이 아파하게 하소서. 늘 시에라리온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늘 깨어있고 싶습니다. 늘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멘.”
작은 정성이 시에라리온을 도울 수 있습니다
▲ 말라리아 환자 2주 입원 치료 비용 : 7만원
▲ 중고등학교 1년 학비 : 2만1000원
▲ 초등학교 1년 학비 : 2000원
▲ 우물 공사 및 설치비용 : 400만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