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성경이 들리네~
서울·수원·대전 등 8개 교구 주보 녹음
마음을 담은 목소리 말씀 귀에 쏙 들리네
“○○주보. 2008년 3월 2일. 제1584호.”
입은 오밀조밀, 발음은 또박또박. 장음은 길게, 단음은 짧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결코 녹록치 않다. ‘시각’을 대신해 ‘청각’을 그려내는 사람들이 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서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는 소리주보를 녹음하는 ‘녹음봉사회’가 있다. 이름하여 ‘겨자씨’. 작은 겨자씨를 시작으로 큰 나무가 되겠다는 봉사자 아주머니들의 다부진 심산이다.
마음을 적는 작가
봉사회의 녹음실을 찾았다. 방음벽이 둘러쳐진 6㎡ 남짓한 방.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녹음실에 봉사자 송애경(카타리나, 56, 서울 개포동본당)씨가 헤드폰을 꽂고 앉았다. 부드럽지만 힘차게,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일품이다. 벽에는 메뉴얼이 붙어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마이크, 스피커 등을 직접 그려놓은 아주머니들의 그림솜씨가 귀엽다.
매뉴얼 옆에는 ‘녹음 멘트하는 방법’이 적혀있다. 중요한 ‘★’표시를 3개씩이나 그려놓고 ‘본문에 들어가기 전 제목을 다시 읽어주고, 3~5초 동안 호흡을 가다듬는다’라고 적어놓았다. 정확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봉사회의 녹음요령이다.
주보멘트 앞뒤로 배경음악을 넣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엔지니어 없이 스스로 배경음악을 넣고, 녹음버튼을 눌렀다가 끊었다가,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이들은 ‘소리주보를 녹음하는 것처럼 신나지만 어려운 일이 없다’고 말한다.
독서를 읽을 때는 전례봉사자가 돼야하고, 복음환호송을 읽을 때는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가 돼야하기 때문이다. 교회소식란은 소식을 일러주는 본당신부의 마음으로, 주보 안 예쁜 글들은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읽는다.
주보 중간에 삽화가 그려진 경우에는 세세히 일러주기 위해 색깔과 모양 등도 설명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녹음파일 사이로 소소히 적어 내려가는 재미. 그들은 ‘마음을 적는 작가’다.
전직 아나운서였던 회장 임순남(구네군다, 62, 서울 개포동본당)씨가 말했다.
“주보 한 장을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르를 다 녹음할 줄 알아야 해요. 더 나은 소리주보를 위해서 제가 본의 아니게 봉사단원들을 많이 혼냈지요.”
이들이 녹음봉사회를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활자도서를 읽는데 불편을 겪는 신자들이 많아 시작된 봉사가 현재 서울, 대전, 수원, 청주 등 8개 교구의 소리주보까지 녹음할 정도로 커졌다. 겨자씨가 나무로 자라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봉사자 수는 22명. 보통 화요일에 주보를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수, 목요일은 녹음을 하고 월요일에는 신입들의 교육을 진행한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소리주보가 필요한 사람은 단지 시각장애우 뿐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어르신, 요양환자, 해외에 거주하는 신자들도 소리주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지도를 맡고 있는 김마리클라우디아 수녀(성모성심수녀회)는 “소리주보는 오래 전부터 시도됐어야할 일이지만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며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녹음을 해주시는 봉사자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테이프를 듣지 않는 요즘, 장비의 낙후로 인해 봉사단은 해체될 위기에도 놓였었다. 하지만 일이 없던 그때에도 ‘주님께서 어딘가에 날 쓰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봉사자들.
작은 녹음실이지만 이제는 직접 녹음파일을 만들 수 있는 기계도 설치되고 소리주보도 활성화되고 있다니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소리주보에 녹음된 겨자씨의 마음. 귀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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