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도 서울 시내의 한 양로원을 방문해 할머니들의 목욕을 돕고, 빨래와 도배도 도와드렸다. 항상 틈날 때마다 어디든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러고 나면 몸은 좀 고되다. 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 ‘내 부모님이다’라고 생각하면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즐거울 뿐이다.
그렇게 기쁘게 봉사를 다닐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도 10여 년 이상은 오로지 누워계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덩치가 꽤나 큰 편이셔서, 잘못하면 옆에서 간병하는 이가 다칠 수도 있었다. 난 어머니의 기저귀도 늘 갈아봤기에 다른 어르신들도 자연스럽게 도와드릴 수 있었다. 한때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내가 능숙하게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일도 여러번 있었다.
때에 따라서, 또 누구든 중환자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환자와 함께 살지 않거나, 혹은 가끔 와서 만나게 되면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하기 싫고 힘들어서라기 보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간병은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만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일반적으로는 집안에 환자나 어르신이 계시면 목욕한번 제대로 시켜드리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목욕을 안하려고 발버둥치고, 내 머리채를 잡고 고집피우던 모습도 있으셨지만, 그러다 목욕을 시켜드리면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편안히 잠드셨었다.
난 요즘도 그렇게 복지시설에 봉사를 다녀온 날은 밥도 맛있고, 잠도 참 잘온다. 아마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못느낄 일이다. 이렇게 봉사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져 기쁠 뿐이다. 항상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열손가락을 다 쓸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가끔 사람들이 어릴 때 내 모습은 어땠는지 묻곤 한다.
어릴 때부터 난 붙임성과 인사성이 아주 좋은 아이였다고 한다. 12남매 중 열한번째 딸로, 한번도 새옷을 입어본 기억도 없었다. 그나마 헌옷도 형제자매 몇명을 거쳐가며 물려, 몇 번씩 접어접어 입었지만 늘상 밝게 웃는 아이였다.
장래희망은 참 여러번 바뀌었다. 아주 어릴 땐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조인이 되고 싶었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항상 남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매일 남을 돌보고 동네 일을 챙기시는게 일과였다. 글자 그대로 집에 쌀이 한톨 남지 않고 떨어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에게 줄 것을 먼저 챙기는 분이셨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법조계에서 일하는 오빠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항상 이웃들의 일을 대신 봐주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곤 나도 법조인이 되어 남을 돕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느 날은 배구를 시작했다. 운동도 원체 잘해 배구선수로 전국체전에도 나갔었다. 또 주산과 암산에도 능해 자격증도 따고 한참 재미를 느꼈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얼마 전에도 서울 시내의 한 양로원을 방문해 할머니들의 목욕을 돕고, 빨래와 도배도 도와드렸다. 항상 틈날 때마다 어디든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러고 나면 몸은 좀 고되다. 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 ‘내 부모님이다’라고 생각하면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즐거울 뿐이다.
그렇게 기쁘게 봉사를 다닐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도 10여 년 이상은 오로지 누워계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덩치가 꽤나 큰 편이셔서, 잘못하면 옆에서 간병하는 이가 다칠 수도 있었다. 난 어머니의 기저귀도 늘 갈아봤기에 다른 어르신들도 자연스럽게 도와드릴 수 있었다. 한때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내가 능숙하게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일도 여러번 있었다.
때에 따라서, 또 누구든 중환자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환자와 함께 살지 않거나, 혹은 가끔 와서 만나게 되면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하기 싫고 힘들어서라기 보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간병은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만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일반적으로는 집안에 환자나 어르신이 계시면 목욕한번 제대로 시켜드리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목욕을 안하려고 발버둥치고, 내 머리채를 잡고 고집피우던 모습도 있으셨지만, 그러다 목욕을 시켜드리면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편안히 잠드셨었다.
난 요즘도 그렇게 복지시설에 봉사를 다녀온 날은 밥도 맛있고, 잠도 참 잘온다. 아마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못느낄 일이다. 이렇게 봉사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져 기쁠 뿐이다. 항상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열손가락을 다 쓸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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