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청탁을 받고 사목체험기를 쓰는 동안 발령이 났다. ‘교구 사목국장’. 사제에게 발령은 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이다. 하느님께서는 교회와 주교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소명을 주시니 순명하고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을 끝내고 다시 본당으로 돌아왔다. 수 년 간 떠나있던 교우들의 곁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생각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사목 현장으로의 복귀는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바였으나, 변화된 현장의 분위기에 오랫동안 떨어진 감으로 과연 올바른 사목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또한 적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의 부족함이나 과실이 신자들에게 누가 되어 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은 커녕 방해되는 존재가 되면 큰일이라는 부담이 컸다.
그렇게 부임한 본당은 도시의 번잡함도 시골의 모자람도 없는 적당한 규모의 아름다운 공동체였다. 반세기가 넘는 연륜에 걸맞게 지역사회에서도 탄탄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기존의 신자들과 전입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을 모색하고 있었다. 넓은 정원에 잘 가꿔진 꽃과 초록이 일 년 내내 우거져 아침이면 새들의 지저귐에 잠을 깰 수 있는 행복이 충만했다.
신자들은 목자를 신뢰하며 따라줬고 열심히 노력하는 신앙의 삶으로 부족한 나를 메워 줬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부터 구십이 다 된 어르신들까지 사목자를 아끼며 사랑해 줬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과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매일이 축제였고 새로움과 은총의 연속이었다. 내가 그들의 목자임이 자랑스러웠고, 나를 자신들의 목자로 받아들여 따라 주는 신자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안배하시고 마련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한없이 감사했다.
장날이면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사제관 문 앞에 놔두고 초인종만 누르고 사라지는 뒷모습에, 내가 감기가 들어 콜록거리면 마치 당신들이 죄인이 된 양 미안해하던 표정에서, 신부님 드시라고 성당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가꾸는 그들의 땀방울을 보며, 사제에 대한 애정을 통해 드러나는 교회와 하느님께 대한 순박한 믿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넘치는 사랑 속에 나의 사목 생활은 또 무사히 한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사제 수품 때 주교님은 이렇게 훈시하셨다. “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이에게 전하십시오. 하느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고, 읽은 바를 믿고, 믿은 바를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실천하십시오.” 꽤나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해지는 이 가르침을 후배신부님들의 수품식에서 다시 듣게 될 때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 것은 물론 그렇게 만은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뼈아픈 자성이다. 나는 특히 가르친 바를 실천하지 못했음으로 고백한다. 말은 많이 하고 가르치기는 열심히 했으되 실천에는 많이 소홀했고 부족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대로 한 번 살아보라고 사목국장으로 부르셨는지 모르겠다.
사목은 실천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먼저 앞서 가셨듯이, 사목은 신자들에 앞서 자신의 신앙과 말을 실천하며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자!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 보자. 아자! 아자!!!’
- 신호철 신부 (춘천교구 사목국장)
그동안 집필해 주신 신호철 신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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