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선교사 열정 깃들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걸었다. 맑은 하늘,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등 풍광의 아름다움에 절로 취하게 되는 느낌.
손골성지(전담 윤민구 신부)로 가는 길은 사람을 자연 속으로 녹아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은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고 있었다. 성지 입구에 다다를 무렵, 순교자 현양대회가 열림을 알리는 현수막이 하늘 중간에 걸려있었다.
소박하고 포근한 기운을 느끼게 만드는 이곳은 그 옛날부터 신자들의 부락을 뜻하는 ‘성교촌’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아름다운 공동체 ‘손골’
손골성지 전담 윤민구 신부가 말했다. “서양 선교사들의 편지에도 손골은 아름다운 공동체로 묘사되어있습니다. 교우들은 어려운 박해시기에도 매일 미사에 참여하는 등 남다른 신앙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손골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서울과 인근지방에서 숨어들은 신자들이 이룩한 교우촌이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에는 교우촌의 규모가 10여 호 정도 됐다고 한다.
손골은 이요한, 아들 베드로, 손자 프란치스코 삼대가 신미년(1871년)에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손골에는 페롱 신부(1857년), 성 오(오매트로) 신부(1863년) 등이 입국해 조선말을 배우며 활동한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남다른 신앙과 열정으로 교우들을 위해 애쓴 선교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이다.
1864년 사제품을 받은 도리 신부는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다. 그는 홍콩, 상해, 요동, 백령도 등을 거쳐 선교를 위해 프랑스에서 떠난 지 1년여 만에 내포에 도착하게 된다.
1865년 5월 조선에 도착한 후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친 그는 병인박해가 기승을 부리자 교우들을 피신시키고 복사까지 돌려보낸 후 기도 중에 배교자 이선희의 밀고로 포졸에게 체포된다.
포도청에서 조선에 온 경위와 체류에 대해 설명, 심문을 받은 후 1866년 3월 장(베르뇌)시므온 주교와 백(브레트니에르)위스토 신부, 서(볼리외)루도비코 신부와 같이 군문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소박하고 포근한 기운 느껴져
손골성지가 도리 신부를 기념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103위 순교성인이기도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1865년 6월 23일 손골에 온 후 1866년 2월 27일 체포된 날까지의 기간만 250일.
이러한 이유로 손골은 도리 신부의 출신 본당인 ‘쌩 띨래르 드 딸몽’ 성당과도 교류했고 도리 신부의 후손들은 1984년 손골을 방문했었다.
아름다운 공동체, 서양 선교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또 순교자들의 땀이 배어있는 이곳이야 말로 신앙의 샘터라 할만 했다.
순교자 현양대회를 알리는 성가가 들려왔다. 성스런 땅에서 봉헌되는 미사. 교우들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성지를 나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함께탄 신자들 몇몇이 말했다.
“다른 성지 많이 가봤지만 손골 만큼 따뜻한 기운을 느껴본 곳이 없는데.”
“개인이 오기에 참 좋은 곳인 거 같아.”
버스는 신앙인들을 태우고 도심을 향해 달렸다.
■ 순례 및 후원 문의 031-263-1242
■ 미사 매주 주일 오후 2시, 수 목 오전 11시, 금 오후 2시
■ 대중교통 분당선 미금역하차―마을버스 17번 승차―염광의원 앞 하차―마을버스 17-1 승차-종점 하차-도보로 5~10분
사진말
손골성지에 세워진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 동상.
3월 7일 손골성지에서 열린 도리 신부 순교 142주년 순교자 현양 대회.
순교자 현양 대회에 앞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 신자들.
성지 내 도리 신부 기념관. 도리 신부가 사용하던 물품들이 전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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