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에 형성된 ‘토대’ 읽어라
‘하느님 안에서의 나’로부터 영성문제 출발
누구든지 더 나아지고자 하는 ‘형성’ 지녀
‘오리지널’(original) 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최초의, 원시의, 기원의, 근원의, 본래의, 원래의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속된말로 ‘진짜배기’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때 이 ‘오리지널’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처음 근원부터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중간부터 생각하면 폭이 좁다. 전체를 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영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선 영성적으로 살고자 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 아닌가.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하느님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구원, 나와 하느님의 만남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영성에 대한 문제는 존재의 근원이며 존재 자체, 절대자, 궁극자, 불변자, 제1원인자, 궁극적 관심자, 형성하는 신적 신비, 곧 하느님 안에서의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인가. 간단하다. 우리는 누구나 ‘초월’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육상선수는 기록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음악가나 무용가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 노력한다. 생물학자는 세포 속을 들여다 보려고, 또 천문학자는 우주를 멀리 보기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 인간은 이처럼 뭔가 더 나은 경향으로 나아가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이것을 어렵게 표현하면 ‘인간은 초월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가 된다.
이처럼 더 나은 방향으로 초월하려는 것은 단순히 세상 속에서 잘 살기 위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밥을 더 많이 먹기 위해 하늘을 탐구하지 않는다. 인간 내면에 본래적으로 더 나은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려는 욕구와 갈망이 담겨 있다. 인간이 초월적 존재이고 영적인 존재인 것이 바로 이점에서 그렇다.
왜 인간은 이렇게 초월적으로 좀 더 높은 상태를 원하는 것일까. 하느님께서 원래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 이것을 우리는 앞으로 ‘형성’(Formation)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쉽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미리 형성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형성’이라는 말은 앞으로 자주 나오는 만큼 잘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아무튼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 ‘미리 그렇게’ ‘형성’되도록 계획된 존재다. 하느님은 뭔가 이 세상을 형성해 주셨고 그리고 지금도 형성하고 계시고 미래에도 형성시켜나갈 신적인, 어떤 신비스런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뭔가 당신의 능력을 주셨다. 강아지에게는 육체를 주시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일러 주셨다. 식물들도 나름대로 뿌리를 박고 살아갈 수 있는 외면과 내면의 생명력을 주셨다.
인간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어떤 토대’가 있다. 이 토대를 잘 활용하면 마더 테레사 수녀님 혹은 교황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지만, 이 토대를 잘 못 사용하면 히틀러나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어떤 아이는 성실하고 귀한 삶을 살아가는 반면에 어떤 아이는 막가파로 성장한다. 똑같은 튼튼한 두팔과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은 올림픽에 나가서 수영 금메달을 따고 어떤 사람은 아예 예선전도 통과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토대를 어떻게 활용 했으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다.
자녀가 좀 잘못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는 “너 이렇게 살면 안돼” “오늘부터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다르다. 집에 일찍 오면 뭐하나 재미가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생각으로 온통 머리가 가득 차 있다. 몸은 비록 집에 있어도 마음은 온통 친구에게 가 있고 PC방에 가 있다. 무조건 일찍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아이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부모 및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그동안 맺어 왔는지에 대해 잘 분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할 때 “너 앞으로는 외출 금지야!”하는 고함소리가 바로 튀어 나온다. 이런 식으로는 아이를 변화 시키지 못한다.
토대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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