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내가 뜬금없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 했었다. 부모님부터 친구, 후배들에 이르기까지 반대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그런데 후배들의 반대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 한 마디로 “형은 성질이 못돼서 신자들 상처 받아요!”라는 것이었다.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신부 되었을 때 만나는 신자들을 걱정하는 꼴이었다. 비록 본당에서 교리교사 하면서 좀 깐깐하게 일했기로서니,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뿌린 대로 거두는 수밖에.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나름 회개(?)하고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했는데, 이제는 본당 수녀님이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나는 나대로 회개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시키는 건 뭐든지 했다. 신앙학교 중 막노동은 기본이고, 시중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는 이유로 교사실에 다용도 수납 가구도 직접 만들었다. 게다가 각종 행사문서와 전례 문서 정리까지 수녀님이 맡기는 일은 뭐든지 다했다.
그렇다고 그분이 신학생을 얕잡아보고 일만 시키는 욕심꾸러기 수녀님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수녀님과 함께 있으면서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깨트리고, 배우는 시간이 됐다. 보통 신학생이 되면 신자들로부터 “착한 사제, 좋은 사제가 되라”는 일반적인 얘기를 많이 듣는데, 수녀님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분은 개학을 앞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학사님은 마른 사막 같아요….”
단 한 마디로 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감정을 실어서 나를 훈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나를 평가하는 말도 아니었다. 깊은 묵상과 기도 속에서 나에게 어렵게 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마음이 좀 불편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벌가벗고 서 있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에게는 화두가 생겼다. ‘마른 사막 같은 신부가 어떻게 신자들에게 시원한 물을 내어주고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이후에 신학교 생활 하면서도, 사제가 되어서도 이 화두는 끝나지 않았다. 수녀님 말씀대로 내가 메마른 사막이라면, 그리고 메마른 사막을 한 순간에 풍요로운 숲으로 만들 수 없다면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을 오아시스라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오아시스를 찾는 일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쩌다 오아시스를 찾았다 싶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공허함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사실 지금도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일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신자들은 신부에게서 꾸준하게 뭔가 특별한 것을 얻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많이 느낀다. 그에 비해 나는 바닥을 쉽게 드러내는 마른 우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있다는 생각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내가 계속 사제로 살기를 원하시니, 뭔가 당신이 생각 해 두신 계획이 있는 것 같다. ‘광야를 체험한 인간이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서 있을 수 있다’는 어느 신부님의 얘기처럼, 나는 아무래도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날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갈증을 풀어 줄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발견해야 될 것 같다. 그래, 메마른 사막에도 꽃은 핀다! 화이팅!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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