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으로 눈물 닦아내는 엄마를 뒤로 하고 나 또한 눈물이 범벅되어 서울로 올라왔던 시절, 이후로도 눈물 흘려야하는 날을 많이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는 날마다 김치만 먹고 살아, 어느날은 빈혈로 약국 앞에서 그만 쓰러져 약사님의 보살핌으로 3일 후에 깨어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난 데뷔 1년 만에 특별가수에 뽑힐 정도로 기량을 인정 받았다.
나의 매니저는 바로 가수 김상범 선생님이다. 이분은 내게는 단순한 매니저가 아니라 스승님이다.
김상범 선생님은 20살 나이에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 나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서주셨다. 게다가 자신의 가수 인생을 접고 본격적으로 내 뒷바라지에 나섰다.
김선생님은 성격이 좋고 붙임성 있고 목소리가 발랄하다고 아껴주시면서 79년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라는 노래를 주셨다. 이 노래가 당시 중동건설 붐으로 외국에 나간 근로자 가족의 가슴을 파고들어 남들보다는 쉽게 가요계에 진입했다. 나에게 가요계 대 선배인 김선생님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첫 히트곡 ‘정말로’는 물론 ‘요즘 여자 요즘 남자’ 등을 작사, 작곡해주셨다. 자신도 ‘오뚜기 인생’ 외에도 ‘천생연분’ 등의 히트곡을 내셨다.
반짝 나타났다가 금세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가수생활, 내가 눈앞에 닥쳐온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긴 호흡으로 연예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분도 김선생님이다.
연예계라는 게 그렇다. 매니저를 잘못 만나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데 나는 선생님을 만나 온실의 꽃처럼 곱게 가수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내가 20여 년 이상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김선생님 덕분이다. 정말 난 김선생님이 수십년 고생하면서 일궈놓은 토양에서 나오는 수확을 거두는 것 뿐이다.
그런 선생님께서 만성신부전증으로 병원에 입원, 내가 모든 수입의 20%를 매니저 몫으로 떼어 김선생님께 드리자 주변에서는 의아해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몫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가수로서 받는 수입이 있는 한 그 몫은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드릴 것이라는게 내 다짐이었다. 나의 은인인데 그 정도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가수로서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고 지금까지 가수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뷔 이후, 나는 의외로 명랑하고 빠르고 경쾌한 가요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 거의 대부분은 사랑에 울고 이별에 눈물짓는 애절한 트로트에 빠져들기 마련인데 나는 ‘정말로’, ‘포장마차’, ‘요즘여자 요즘남자’, ‘해피데이’, ‘춤추는 탬버린’, ‘오빠는 잘 있단다’ 등 밝은 노래로 히트를 한 듯 하다. 명랑가요가 내 브랜드가 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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