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내게 ‘내일’과 같은 것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입으로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막상 죽음과 가까워졌을 때, 부활을 의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부활이 다가오던 3월 13일. 예수의 부활을 의심해 그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었던 제자 ‘토마스’처럼, 부활을 보고 싶어 ‘토마스’가 되어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연장선 위에 있는 부활을 보기 위해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말기암환자 호스피스, 청주 성모꽃마을로 말이다.
# 고백1
안개가 자욱이 낀 공기를 헤치고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10분이 지나자 1층 성당에 환자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거동이 가능한 요양환자들이다. 환자와 봉사자 모두 제대 앞에 앉은 것은 10시 20분. 입당성가가 시작됐다.
성모꽃마을 원장 박창환 신부의 주례로 미사가 시작됐다. 여느 때처럼 그들도, 기자도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뒤이어 거동하지 못하는 말기암환자들을 위해 박신부가 병실로 들어가 봉성체를 한다. 가쁜 숨을 내쉬어도, 구토와 욕창으로 녹초가 됐더라도 그들은 ‘성체’를 기다렸다. 그들이 고백하는 ‘생명과 부활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미사를 마치자마자 새 환자가 입소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아버지 환자다. 어제 한 환자가 선종했다는데 또 다른 환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3월 1일부터 선종한 환자만 모두 11명. 하루에 한 사람씩 하늘로 올라간 셈이다.
빼곡히 적힌 게시판에 새로 들어온 환자의 이름이 적혔다. 뇌, 자궁, 전립선 등 환자들의 아픈 곳이 다양하다. 게시판을 바라보다 박신부를 따라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박신부가 개설한 ‘무료 요양시설’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마친 후 아무 조치도 받을 수 없는 것에 착안해 마련한 보금자리다.
“이따가는 ‘노래’를 할거에요. 스트레스를 풉시다. 까짓것, 죽는 것보다 낫잖아요?”
‘죽음’에 대한 진한 농담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자하는 박신부의 노력임을 아는지 환자들은 이어지는 작고 민감한 농담에도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데 모두가 웃는 가운데 웃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티아라고 했다. 보호자인 아내와 함께 입소한지 6일째다.
“마티아씨. 본인이 웃으면 아내가 기뻐하죠? 불안감 대신 자신감을 가지세요. 아내를 위해서라도 힘내고, 웃어봅시다.”
그가 박장대소보다 큰 미소를 지었다.
# 고백2
1층으로 돌아왔다. 신헬레나(48). 2005년부터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다. 말기 암환자에게 ‘죽음’과 ‘부활’을 묻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용기를 내 물었다.
“나에겐 왜 기적이 없을까, 주님을 원망했죠. 그러다 ‘내가 죄가 많아서 이렇게 된 걸까, 남을 미워했다면 모두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나도 내 마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신헬레나씨를 취재하던 중 같은 병실에 누워있는 강가밀라(43)씨가 오히려 취재를 청했다. 유방암 환자로 하반신까지 암이 전이돼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살려주세요, 죽여주세요’를 반복한다고 했다. 대소변을 거두는 엄마를 보거나 통증이 밀려오면 ‘죽고싶다’가도 창밖을 보면 ‘살고싶다’고 했다.
“건강할 때 많이 웃으며 사세요. 이제 전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나 봐요. 미워했던 사람도 용서하고. 무료로 성모꽃마을에 오게 해주신 하느님께도 감사드려요.”
암을 통해 용서와 이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웠다는 강씨. ‘꼭 놀러오라’는 말에 약속하며 병실 문을 닫았다.
# 용서
봉사자 진은자(로사·60)씨를 만난 것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였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이곳에서 봉사한지 8년이 넘었다. 환자들의 진물이 흐른 시트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교리를 하며 말벗까지 해주는 호스피스 봉사자다.
똑똑. ‘공부합시다’라는 힘찬 인사를 하며 진씨가 병실문을 두드렸다. 천주교를 알고 싶어하는 환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자, 인사기도 합시다. 내 몸에 십자가를 긋는 거예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할머니 한분이 따라하며 기자에게 눈을 찡긋한다. ‘주의 기도’가 시작됐다. 기도 가운데 ‘부활’이란 단어가 나왔다.
“하느님이 살아나신 걸 부활이라고 해요. 우리는 직접 보지 않아도 ‘내일’이 올 걸 알고 있잖아요. 부활도 내일처럼 꼭 오는 거랍니다.”
할머니들이 ‘그렇지’라며 무릎을 친다. 말기암환자들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할머니가 말했다.
“하느님 믿기 전에도 ‘제 몸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하느님, 좀 봐주세요.’했어. 그런데 요즘엔 죽는 게 뭐가 무서워. 코 부릉부릉 골다가 잘 가야지.”
그 대답에 웃는 진씨에게 호스피스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한번은 교도소에서 남자환자가 왔어. 신부님한테는 교리를 한다고 해. 그런데 내가 들어가면 ‘죽느냐, 사느냐 판에 무슨 예수 믿으라고 그러느냐’고 욕하는 거야.”
그런 일들이 일어난 지 여러날. 그의 선종이 시작됐다. 선종날, 그의 밤을 지켜준 것은 진씨였다. 어머니와 동생을 미워했던 그가 한풀이를 시작한 것도 그날이었다.
진씨는 ‘원수를 맺는 것보다 한을 풀고 가는 게 낫지 않느냐’며 용서를 권유했고 그는 어머니와 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옹하며 선종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더라고. ‘미안했고 세례도 받고 싶다’고. ‘가밀로’라는 이름으로 대세받고 떠났어요.”
# 부활
성모꽃마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서 생을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서와 화해’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 죽음 뒤에 부활이 온다는 것을 믿어. 강아지, 곤충처럼 죽을 순 없잖아. 마음의 화를 풀고 가는 것, 아름다운 죽음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부활이겠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그 죽음 안에서 화해를 청할 때 ‘내 모습’도 부활하는 것이라 했다. ‘꽃마을’ 안에서 ‘꽃’처럼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매일의 부활’을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의 말씀처럼,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도 ‘매일의 부활’을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진설명
▶청주 성모꽃마을 호스피스 봉사자 진은자씨가 한 환자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다.
▶청주 성모꽃마을에 살고 있는 한 환자의 침대에 걸린 묵주와 기적의 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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