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섧디 서러웠던 삶… 이제는 편안해야죠”
노인전문주택은 수도회 선배들 뜻 이은 것
한센인과 함께 해온 시간은 ‘축복이며 은총’
모든 건축물에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 지었고, 언제 지어졌으며, 어떻게 지었느냐다. 이 가운데 ‘고통과 부활’이 함께 서려있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내년 50돌을 맞는 경남 산청군 산청읍 한센환우들의 보금자리, 성심원(원장 황재구 수사)이다. 그 가운데 작은형제회 한국관구(관구장 오상선 신부)가 서있다. 한센환우들과의 고통과 부활을 함께 해온 그들. 그 중 노인전문주택 3개동을 완공하고 최근 폐암 판정에도 불구, 마지막 1개동 완공을 남기고 있는 전 원장 박영선 수사를 만났다.
“이곳을 설립하신 꼬스탄죠 쮸뽀니 신부님, 박재홍(시메온) 수사님, 이재환(라파엘) 수사님, 백종순(안젤로) 수사님…. 그분들이 다 하신 것이지,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영선 수사는 한사코 인터뷰에 손사래를 쳤다. 작은 형제회의 선배수사들이 함께 해온 작업이지, 자신이 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사님의 이야기로 하여금 많은 독자들이 한센환우에게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실제로 작은 형제회의 많은 수도자들이 한센환우와 ‘고통과 부활’을 함께 했다. 마을의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에 편지를 썼던 일, 한센환우들의 병원진료를 거부당했던 일, 함께 밭을 갈고 누에를 쳤던 일, 수해로 인해 축사가 유실됐던 일 등이다.
박수사는 선배 수도자들의 뒤를 이어 한센환우들을 위한 노인전문주택을 건축했다. 2006년 전문주택 2개동 완공, 2007년 10월 1개동 완공, 마지막 1개동은 올해 10월 완공예정이다.
노인전문주택을 건축하는 이유
그가 지은 노인전문주택에는 그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한센병으로 인해 손기능과 발기능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문고리가 없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싶지만 자금이 모자라 각 층마다 입구를 만들어 언덕과 연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끄러지지 않는 타일, 손잡이 등을 마련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진주 하대동 프란치스코 노인요양원, 장성 프란치스코의 집 등을 건축하며 생긴 경험을 살린 것이다.
그는 한센병이 사라진 지금, ‘한센환우는 향후 10년 이내 급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노인 전문주택을 짓고 있는 것일까?
“첫째로는 서러움으로 가득 찼던 그분들의 여생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목적이고, 그 다음은 날로 심각해져가는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를 위한 것이죠.”
그는 한센환우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후 성심원이 노인복지의 모델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센환우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천형(天刑)’이 내려진 땅을 지역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함이다.
한센환우 어르신들의 사랑
그는 지난 1월, 인근 암센터에서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짧으면 3개월, 길면 9개월’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주어진 데까지 일을 하면 되고, 내가 없어도 비상체제에 걸리지 않도록 완전히 손을 놔도 괜찮게 다른 분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요.”
그는 현재 건강 때문에 현장에는 나가지 못하고 사무실 안에서 완공돼가는 네 번째 주택을 바라보며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폐암’이라는 단어가 두려울 법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선고를 받고나서야 어르신들이 절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 알았어요. 한 달 용돈 5만원을 쪼개서 ‘치료비로 보태 써라, 맛있는 것 사먹어라’ 하시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사람을 진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더 진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아닌 한센환우 어르신들이었다. ‘서러움’이라는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이분들을 위해 얼마나 봉사할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르신들과 함께 한 것은 저에게 ‘축복’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뵈었으니까요.”
한센환우들은 구·신약성경에서조차 가장 버림받은 이들로 묘사된다. 한센이라는 병이 확인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버림받고 친구와 이웃들로부터 철저히 배격 당했던 것이다. 그 아픔은 그들의 마음속에 피딱지가 돼 앉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다가올 ‘부활’에 대해 물었다.
“부활은 죽음 없이는 없는 것이죠. 자신을 비울 때, 우리는 부활을 더 자주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사순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을 맞은 것처럼 이번 고통으로 인해 더 많은 은총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의 사랑, 사람 관계, 일하는 방법….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나를 더 비워야죠. 다시 태어나도 전 이분들과 수도자로 살 겁니다.”
부활. 한센환우와 함께 해온 작은 형제회의 많은 수도자들과 박수사의 사랑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열린 성심원’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산청 성심원은
작은형제회 복음 실천 공간
작은형제회 이탈리아 리구리아 관구 소속으로 한국 선교사로 파견된 꼬스탄죠 쥬뽀니 신부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 진주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던 쥬뽀니 신부는 진주 현남동의 ‘구생원’ 한센환우들의 요청으로 전교회장을 파견, 18명의 구생원 환우들의 세례를 돕는다.
1959년 6월 18일, 종교적 갈등으로 고통받던 60여 명 사람들이 현 성심원으로 이주 정착하고 6월 19일, 예수성심대축일을 기해 ‘성심원’이라고 명명된다.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받은 한센환우들을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성회복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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