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발령 받은 곳이 김천 평화성당이었다. 당시 나를 맞아 주셨던 주임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딱 한 가지만 강조하셨는데, “신부는 미사 집전하는 것과 고해성사 주는 걸 귀찮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였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보좌신부가 당연하게 하는 일이었지만, 나도 나름대로 미사와 고해성사만큼은 정말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었다. 본당의 모든 미사 30분 전에 고해소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주임신부님께서는 판공시기가 아니면 고해소에 들어가실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어떻든 이렇게 성사를 많이 주다 보니 신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이 접했고, 때때로 황당한 사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신자나 신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은총을 얻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보좌신부 3년차가 되면서 서서히 미사나 성사 집전에 익숙해지고 조금은 타성에 젖을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낯선 여자 이름으로 책 한 권과 짧은 편지가 담긴 소포가 배달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소포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스토커가 생기는 건가?’ 이런 생뚱맞은 상상을 하며 편지를 읽었는데, 놀랍게도 그분은 몇 개월 전에 나에게 고해성사를 보았던 사람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성사를 봤는데, 큰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며 깊이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편지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내용으로 훈화하고 보속을 줬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면담성사를 했다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분은 성당 고해소에서 성사를 봤던 수많은 신자 - 물론 본당 신자도 아니었다 - 중에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평생 하지 못했을 고해성사를 신부님 덕분에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읽으면서 나 역시 큰 보람과 감동을 느끼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성령께서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고해소에 머물렀던 단 몇 분 사이에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될 수 있단 말인가!
그 자리에 내가 하느님의 도구로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었고, 고해성사가 참으로 ‘은총의 샘물’이라는 사실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나는 더더욱 고해성사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사실 요즘은 본당을 떠나 있기 때문에 판공시기에 여러 본당을 가게 되는데, 간혹 ‘새 신부처럼 성사 주는 속도가 느리다’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하지만 고해성사 안에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면 도저히 더 짧게 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무래도 융통성 없이 성사를 길게 주는 신부로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주임신부가 되고, 새 신부를 보좌로 맞게 된다면, 나도 이것만큼은 꼭 얘기하고 싶다. “신부는 미사와 고해성사를 귀찮게 여기면 절대 안 돼!”라고.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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