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랑합니다
하늘이 끝없이 푸르른 날. 남양성모성지(전담 이상각 신부) 입구에서 눈을 감았다. 은은한 새소리, 얼굴을 스치는 바람. 평온하다는 단어의 뜻이 절로 느껴졌다.
병인박해(1866년) 때 이름 없이 치명한 수많은 순교자를 현양하는 곳, 1991년 10월 7일 성모마리아께 봉헌되고 한국 교회 최초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 눈을 떴다. 성지 입구에 서 있는 성모상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병인박해 때 고문과 처형이 이뤄지던 곳
이곳은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붙들려와 남양 옥에 갇혀서 갖은 고문과 매 질로 배교를 강요당하고, 배교하지 않을 경우 처형당했던 장소이다. 수많은 순교자 중 김필립보와 박마리아 부부도 이곳에서 순교했다. 필립보는 결혼 후 자녀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쳤으며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이었다. 사제가 공소를 순방할 때마다 모든 준비를 도맡아 했고 교우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준비도 그가 했다.
병인박해로 인해 가족이 모두 충청도 신창 남방재로 피신했고 이후 1868년 박해가 성하자 충청남도 합덕읍 신리에 살던 사위의 집으로까지 피신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남양에서 파견된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필립보는 아내와 함께 기도한 후 그들 앞으로 나가 신자임을 자백했다. 남양으로 압송된 부부는 한 달 정도 옥에 갇혔으며 갖은 문초와 형벌 끝에 1868년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들게 했다. 좁다란 길, 양편에 언덕들이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 아늑함이 찾아왔다. ‘로사리오 성모님의 동산’. 원형 구조의 동산인 이곳은 커다란 돌 묵주알이 주변에 둘러쳐져 있었다. 멀찍이 대형 십자고상이 들어왔다. 넓디넓은 이곳에서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 했다. 성모님과 아기예수상, 복자 마더 테레사 수녀상, 성 비오상 등 수많은 상들이 성지 곳곳에 서 있다. 그 가운데 신자들은 대형 돌 묵주알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지와 순례자들을 축복했다. 성지에 있는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본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회의 남양성모성지와 이 성지를 순례하는 모든 이에게 사도적 축복을 내립니다. 모두가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며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를 지속적으로 바치기 바랍니다.”
성모 성지로 선포된 후 이곳은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묵주기도 고리 운동은 현재 수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참여, 이어지고 있다. 또 성지 순례를 하며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하는 피크로스(PICROS) 운동이 1년에 두 차례 실시되고 있다.
신자들이 한 경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과달루페 성모님 경당’.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앉았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무념의 상태로 빠지고 싶었다. 경당을 나왔다. 입구로 되돌아가는 길. 초봉헌실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 초를 봉헌했다. 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성모님이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화가 보였다. 온화한 미소…마음이 훈훈해졌다.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잊히질 않았다. 성모님의 미소 말이다.
■ 순례 및 후원 문의 031-356-5880, www.namyangmaria.org ■ 미사 매일 오전 11시(월요일 미사는 전화확인요), 매주 목요일 오전 10~오후 3시 특별 고해성사 ■ 교통편 승용차이용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우회전 6km 직진→남양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 2km 직진하면 좌측 남양성모성지
사진말
십자가의 길.
묵주알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신자.
성모동산 앞 누워있는 십자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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