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이름 석 자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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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자취를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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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최양업’에 초점…고뇌.학자로서의 삶 조명
조선시대 교우촌 생생히 그려…오는 5월 첫선
처음엔 ‘필생의 역작’을 쓰겠다고 벼르고 별렀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한국천주교의 순교사를 쓰는데 바치겠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야 하나’라는 반문도 들었고, 때로는 힘에 부쳐 포기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그의 작품은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소설가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62)씨가 최근 거룩한 외도(外道)를 감행했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삶과 신앙을 조명한 소설 ‘아, 최양업’(가제)을 가톨릭신문에 연재키로 한 것. 40년 문학인생에서 줄곧 소설과 순수문학을 고집하던 작가이기에 이번 작업은 더욱 주목된다.
한씨는 “소설 ‘아, 최양업’은 평생을 작가로 살아온 제게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소명’과도 같다”며 “인생의 늘그막에라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얻은 최고의 행복이자, 소설가로 살아온 생애 최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월간 생활성서에 ‘순교자의 길을 따라’라는 타이틀로 국내 성지 순례기를 집필해 왔다. 매월 한 번씩 국내 성지를 찾아가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고 돌아왔다. 대작을 위한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이번 소설을 위해서도 당시 최양업 신부님이 걸어서 사목했던 경상 전라 충청도 일대를 수도 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도서관을 돌며, 조선시대 복식사와 음식사를 다룬 서적들도 탐독했죠”
최대한 살아있는 소설을 만들겠다는 그의 집념에 따라, 당시 생활상은 물론 작은 에피소드 하나도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했을 정도. 큰 틀보다는 작은 여운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그의 필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한씨에 따르면 이번 소설은 ‘인간 최양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최양업 신부님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결코 초인이 아니었습니다. 대담성이 부족했던 신부님은 때로는 큰 결정을 앞두고 고뇌했고,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은 전형적인 학자로서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실학’으로서의 천주교, ‘신학’으로서의 천주교를 말한다기 보다는 최양업 신부가 살았던 조선시대 교우촌과 신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한씨는 흔히 말하는 ‘가톨릭 소설=선교소설 혹은 신앙체험기’란 공식을 탈피하고 싶다 했다. 신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닌, 신자가 아닌 일반인 누구라도 소설을 읽었을 때 ‘천주교에는 최양업이란 훌륭한 신부님이 계셨구나’라는 사실을 전하고픈 것이다. 제목을 ‘아, 최양업’이라 지은 것도 무엇보다 최양업이란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그의 뜻이 더해졌다.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서는 세상이 다 알지만,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 신자들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현실입니다. 한국교회의 두 번째 사제를 넘어서 최신부님이 국민의 영웅이고 사표이자, 민족의 선각자로서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소설에는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나 어려운 교회용어, 고어, 사투리 등은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영웅주의’를 피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 한 사람만을 집중 조명하기 보다는, 조연급 주인공들도 대거 등장한다.
한씨는 현재 소설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달 초에는 압록강변을 시작으로 중국 심양 등지와 필리핀, 마카오로 두 차례 현지 취재를 떠난다.
“앞으로 소설을 집필하다보면 저 혼자 훌쩍 배론성지에 찾아갈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 앞에서 혼자 조용히 묵상하다 보면 글귀도 떠오르고 마음도 차분해짐을 느끼거든요. 저를 만나고픈 독자 여러분들, 혹은 소설에 대한 조언을 주실 분들 모두 성지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소설가 한수산은?
- 1946년 강원 인제 출생
-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해빙기의 아침’ 당선
-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 당선, 등단
- 1973년 경희대 영문과 졸업ㆍ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 가작 입선
- 1997년~현재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주요 작품으로 소설 ‘해빙기의 아침’, ‘부초’, ‘바다로 간 목마’, ‘욕망의 거리’, ‘밤에서 밤으로’, ‘거리의 악사’, ‘모래 위의 집’, ‘말 탄 자는 지나가다’, ‘까마귀’ 등과 수필집 ‘젊은 나그네’, ‘저녁에는 그대여 아침을 꿈꾸어라’, ‘이 세상의 모든 아침’,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 등
- 오늘의 작가상(1977) 녹원문학상(1984) 현대문학상(1991) 수상
# 소설 ‘아, 최양업’은?
소설 ‘아, 최양업’은 모두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신부의 어머니’다. 최방제(프란치스코), 김대건(안드레아)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떠나는 최양업 신부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최경환과 어머니 이성례의 삶과 신앙 등 ‘박해시대의 어둠을 헤친 순교자들의 거룩한 삶’이 그려진다.
제2부 ‘먼 길, 십자가의 길’에서는 믿음과 신앙으로 시대의 풍파를 이겨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눈물과 아픔을 담아낼 예정이다. 동시에 중국 대륙을 누비며 사목활동을 펼치던 최양업 신부의 삶을 추적한다.
제3부는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란 제목으로 조선으로 돌아와 온갖 고난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교우들을 찾아 하느님을 증거한 최신부의 업적을 기린다. 특히 제3부에서는 그 동안 시도한 적 없는 ‘배교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당시 배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고통을 통해 박해시대의 모습을 그려낼 예정이다.
# 최양업 신부는?
최양업은 1821년 3월 10일 충남 청양 화성면 농암리 누곡(다락골)에서 최경환(프란치스코·1805~1839)과 이성례(마리아·1801~1840)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국내에 최초로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최방제(프란치스코), 김대건(안드레아)과 함께 1836년 12월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에 유학을 떠났다.
1844년 12월 중국 길림성의 소팔가자성당에서 부제품을, 그리고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사제품을 받았으며, 입국하기 전까지 만주 요동에서 7개월간 지냈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신부는 11년 6개월 동안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의 127개 교우촌(공소)을 순회하며 지칠 줄 모르는 전교활동을 펼쳤다.
극심한 박해를 피해가며 하루 80~100리를 걸어서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최신부는 1861년 6월 15일 식중독과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41세의 나이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같은 해 11월 초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주교와 신자들에 의해 충북 배론의 배론신학교 뒷산 언덕에 안장됐다.
최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는 여러 장의 라틴어 서신을 비롯해 조선 순교자에 관한 자료 수집, 성교요리문답 및 기도서 번역 간행, 천주가사 저술 등의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순교자 성 김대건 신부를 ‘피의 증거자’로 부르는 반면, 최양업 신부는 쉼 없이 전교활동을 폈다 하여 ‘땀의 증거자’로 기리고 있다.
교황청에서는 하느님의 종(시복시성 대상자)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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