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올린 글 때문에 지난 며칠 주변에서 나를 “마른 사막에도 꽃은 핀다”로 불러 주었다. 대중매체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많은 위로를 받은 시간이었다. 그것에 힘입어 이번에도 내 성격에 대한 얘기를 마저 해야겠다.
신학교 입학 전부터 감성적인 것은 별로 없이 원칙과 효율, 정확성만 따졌던 나는 입학 후에도 동기들 안에서 소위 ‘융통성 없고 딱딱한 사람’으로 통했다. 나름대로 좀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천성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학부 1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리 반을 맡았던 부제님의 권유로 동기들끼리 서로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명 ‘롤링 페이퍼’라는 것을 했는데, 동기 신학생들이 원으로 앉아서 각자 빈 종이에 자기 이름을 쓰고 옆으로 돌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이름을 보고 무기명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 종이가 한 바퀴 돌고 나면 자기 이름을 쓴 종이에 동료들의 평가가 고스란히 담기게 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쓰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깐깐하다, 정확하다, 약속을 잘 지킨다, 열심히 한다, 철저하다”등등 예상된 평가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런데 딱 한 문장이 내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웃음이 억지스럽다!”는 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웃는 모습마저 어색하고 억지스럽다는 것은 내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부터 한동안 거울 보는 것이 싫어졌다. 거울 속에는 정말 어색하게 웃는 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도 많이 아팠고, 누가 그런 평가를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동료 신학생 전체에 대한 서운한 감정마저 생겼다. 그리고 ‘억지스럽고 어색하게 웃는 내가 과연 좋은 신부가 될 수 있을까?’하는 소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물론 스스로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런데 마음 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그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사실 신부가 되고 나서였다.
어느 날 평일미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열심한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신부님예, 신부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심더. 미사 와서 신부님 웃는 얼굴 보고 가면 하루가 즐겁심더, 앞으로도 많이 웃어 주이소….”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웃는 얼굴이 억지스럽다”는 평가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느낌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할머니의 얘기를 들은 후에야 정말 자신 있게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딱딱하고 어색한 원래의 성격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웃는 모습을 누군가 좋아하고 나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신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주님, 당신도 응원해 주실 거죠?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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