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뿐”
“50년이라는 시간이 길고도 짧은 것 같습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사제로 살 수 있도록 안배해주신 하느님과 교구 사제단, 수도자, 신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해 사제서품 50주년을 맞는 박정일 주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셨음을 새삼 많이 느낀다”며 “그때그때 주어진 여건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지만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살아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제품을 받기까지 박주교의 삶은 역사적 풍랑 속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소년기를 일제 말기에 보냈고, 20대 초반을 이북의 공산 치하에서 살았으며 6 25 전란을 겪고,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를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변화무쌍한 상황 안에서도 그래도 주님을 믿고 의지했기에 사제로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주교는 1958년 로마에서 서품을 받았다. 이때 택한 성구가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라”(시편 89, 1)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세례를 받은 저는 주일학교 한번 나가지 않고 복사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덕원 신학교에 입학해서는 2학기도 배우지 못하고 폐쇄되는 어려움을 겪었고 로마로 유학을 가서 다른 사제들 보다 6~7년 늦게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사람이 사제가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이 성구를 선택했습니다.”
사제로 50년을 살아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박주교는 선교사목, 교포사목, 시복시성이라는 세 가지 답을 내놓았다.
“전주교구장 때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맞아 해외에 선교사제 3명을 파견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 한국교회도 어려움이 많은데 해외에까지 선교사목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은총을 많이 받은 한국교회가 해외의 어려운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산교구장으로 와서는 에콰도르에 선교사를 파견했지요.”
박주교는 또한 주교회의에서 9년간 이주사목을 담당했다. 체질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설명한 박주교는 세계 각국의 본당을 방문하고 그들의 애환에 귀 기울여 그 당시 많은 교포 신자들이 위안을 얻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은퇴하고도 124위 시복시성을 위한 일을 계속 맡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도 이렇게 한국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순교자 조사 시복재판 등의 일들이 이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은퇴 후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박주교에게 특별한 노하우를 물었더니 박주교는 손사래를 치며 비결은 없다고 설명한다.
“보약을 먹은 적도 없고 특별히 건강 위해 운동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건강을 유지한 것은 규칙적인 생활 덕이 아닐까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운동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특별한 운동 보다는 등산과 산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요즘 박주교는 책갈피 상본 등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자료 등을 이용해 손수 상본을 만들어 직접 자르고 코팅하고…. 박주교에게 상본 선물을 받은 신자들은 그 꼼꼼함과 정성에 감복해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2~3시간 컴퓨터에 앉아서 자료도 찾고 신자들과 메일을 주고받기도 하지요. 메일을 보내온 신자들에게는 꼭 답장을 합니다. 성화나 글귀들을 함께 보내면 신자들이 좋아들 합니다.”
은퇴 후에도 즐겁게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박정일 주교.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후배 사제들을 위한 덕담을 부탁했다.
“앞으로 남은 사제직을 살아가며 바람이 있다면 기도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124위 시복시성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남은여생 기도를 통해 보답하며 살아가야죠.”
또 박주교는 후학 사제들에게 충고도 잊지 않았다. 충실성을 강조한 박주교는 사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성사집행, 성무일도, 강론, 사목방문 등 사제로서 해야 할 일들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기본적인 일들입니다.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사제의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마산교구는 3월 20일 성목요일 성유축성미사에서 사제서품 50주년을 맞는 박정일 주교의 금경축 행사를 가졌다.
축하미사와 축하연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사제단, 평신도 대표의 예물 증정, 교구 사제 중창단의 축가 등이 마련됐다.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는 미사에서 “박정일 주교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좋은 선물”이라며 “주교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신자들이 위로 받고, 주교님의 삶으로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느님 은총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길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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