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두려워말고 “회개하라”
인간은 매 순간 ‘사건’의 경험 반복하며 성장
‘완전한 덕’ 쌓기 전 일상 속 ‘진리’ 먼저 탐구
‘사랑의 진리’ 내 중심에 두어 정체성 회복해야
우리 삶은 매 순간 이벤트다. 이벤트라고 하면 돈 버는 이벤트를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벤트는 하나의 ‘사건’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바로 사건이고 이벤트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 세끼 밥 먹는 것. 이것도 하나의 ‘사건’이다. 보통 우리는 밥 먹는 것을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밥 한 끼 한 끼가 얼마나 큰 사건인지 모른다. 밥 한 끼 잘못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설사로 고통 받는 것은 약과다. 급체라도 하게 되면 당장 응급실로 실려 가야 한다.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밥 한 끼’의 숨겨진 이면이다.
잠 자는 것, 수영장에 가서 수영하는 것(접시물 에도 빠져 죽을 수 있는 것이 세상만사다),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는 것, 자가용을 몰고 직장에 출근하는 등 모든 것이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다.
우리는 이 모든 매 순간의 경험들 그리고 사건들을 접하며 살고 있다. 이 사건들 중에는 좋은 사건이 있고, 나쁜 사건이 있을 수 있다.
또 이 사건들 중에는 내가 해석을 잘하고 대응을 잘 해서 초월적 사건으로 승화시킨 것도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五里霧中) 해결하지 못하거나, 얽매여 살아가는 사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찜찜하게 남아있는 과거,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는 과거들도 사실 해석만 잘 하면 모두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 삶의 자양분이 되는 사건들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형 혹은 언니와 싸움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느낌과 기분이 기억나는가. 화가 나고, 나 자신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형, 언니를 코피 날 때까지 때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나이도 어리다. 형과 언니에게 대들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도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다.
결론은 대개 내가 몇 대 쥐어 박히는 것으로 싸움이 끝난다. 내가 형과 언니의 코피를 내고 싶었는데 정작 코피가 난 것은 나다. 이기고 싶은데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역전된다. 부모님은 코피가 난 나를 위로 한다. 부모님의 따뜻한 위로는 형이나 언니가 아니라 나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형 혹은 언니와의 싸움에 진 이 아이는 그렇게, 폭력으로 이기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이렇게 성장한다.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 나 자신이 하나씩 하나씩 성장해 가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있다. 바로 영성에 이제 갓 입문한 초심자들에게 완덕(完德, 완전한 덕)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덕을 추구하면 완덕에 이르지 못한다. 초덕(初德)부터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계신다. 잘난 척 할 것 없다. 역시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언니, 형에게 두들겨 맞은 것, 화낼 필요도 없고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분들도 사실 잘못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청소년 시절 매우 무분별하게 방탕한 삶을 살던 이냐시오가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회개를 했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된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을 미워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늘 가까이에 있다. 진리는 우리의 일상 안에 있다.
현대는 대단히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이다. 사상도 많고, 의견도 많고, 주장도 많다. 자칫 잘못하면 진정한 가치관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기 쉽다.
중심을 잃고 생활하기 쉽다. 중심을 잃어선 안된다. 세상 만물 안에 계시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랑의 진리 그 자체를 나 자신의 중심에 놓을 때 비로소 세상 보는 눈이 열린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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