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보좌 생활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예비자 교리반에 연세 많으신 할머니와 중년의 아들,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 온 적이 있었다. 세 사람은 언제나 제일 앞에 나란히 앉아서 교리를 들었는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리를 받은 모범생들이었다.
어느 날 ‘교계제도’에 관한 교리를 하면서 ‘사제독신’을 설명했는데, “신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혼자 산다”는 내용으로 열강을 하고 교리를 마쳤다. 그런데 그날따라 할머니 표정이 영 어두웠다. 평소 교리 마치면 “신부님, 수고했습니다”하면서 인사하고 가시던 분인데 그날은 그냥 가시는 것이었다.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도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혹시 침이라도 튀었나?’생각하면서 다음에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로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못 되어서 할머니께서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 할머니는 신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교리 마치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몇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참한 총각이 왜 혼자 사노? 정말 이상하네. 참한 총각이 왜 혼자 살겠노?”
이렇게 그 할머니는 그저 젊은 총각(?) 신부가 열심히 교리 가르치는 게 좋아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교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엔 ‘내가 총각 소리도 듣고, 아직은 생생하구나! 만약 그 할머니한테 참한 따님이나 손녀가 있었다면 중매까지 들어오지 않았을까?’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 봤다. 다행히 할머니 자제분은 이미 다 출가하셨고, 손녀들은 아직 어렸다. 어떻든 그날 교리 때문에 할머니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교리반에 잘 나오셔서 결국 가족 세 명이 함께 세례를 받았다.
재밌는 일화지만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미숙한 열정만 가득해서 신부가 독신을 지키며 사는 것을 무슨 훈장을 단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독신’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한 총각이 왜 혼자 사노?”라고 안타까워했던 그 마음의 무게를 나도 조금씩 느끼기 때문이다.
신부가 독신을 지키며 사는 것이 단순히 정결을 지켜서 남들 보기에 조금 더 특별하고 거룩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표징이 되는 것임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반면 사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하시는 신부님들, 사제직의 엄청난 무게를 매일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아가시는 선배 신부님들이 오늘따라 더욱 존경스럽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신부는 서품을 받는 순간부터 신부지만, 진정한 사제는 세월 속에서 성숙하고 다듬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이나마 그렇게 다듬어지고 성숙해 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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