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회 총체적 구원 바란 선각자
“신앙심·애국심 조화 시킨 인물”…모범적 신앙 ‘재해석’ 필요
‘순교영성’ ‘신앙관’ 현대 신자 삶과 연결시켜 적극 연구해야
한국의 모세, 한국의 사도 바오로라 불리는 안중근(토마스).
하지만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안중근은 여전히 의사(義士) 안중근일 뿐이지 신앙인, 그리스도인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가 신자였어?”라는 적잖은 신자들의 반응은 안의사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물론 교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그간 무관심 속에 방치하다시피 해온 현실을 잘 보여준다.
안의사에 대해 안다고 하더라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거사에 앞서 총알에 십자가 표시를 새겨 넣고 성공을 위해 기도한 일, 감옥에서 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며 기도했다는 등 단편적인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독립운동가나 신앙인으로 부분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한 논의가 교회 안에서 본격화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한계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신앙인 안의사의 면모에 대한 신자들의 지식은 비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안의사의 의거 100주년(2009년 10월 26일)을 앞두고 신앙인 안중근을 믿음의 증거자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새롭게 제시해 그리스도인적인 삶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고려대 노길명 교수(사회학과)는 “안중근 의사는 신앙심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인물”이라고 강조하고 “안의사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 현세와 내세,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구원시키고자 하는 신앙을 갖고 있었던 선각자로 봐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남대 윤선자 교수(사학)는 “그간 안의사에 대한 관심과 현양은 각 교구나 본당, 신자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돼 왔으나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신앙적 차원에서 밀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노력들도 한국 천주교회 차원이 아니라 관심 있는 개별 성직자 등의 영향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공식적으로 한국 교회 차원에서 신앙인 안중근에 대한 연구와 현양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이 같은 현실을 대변해준다.
실제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는 추모미사도 안의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79년 9월 2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것이 처음이다. 신앙인 안중근을 학문적으로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1990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안중근 의사 추모자료집’을 간행한 것이 기점을 이룬다. 이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1993년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 운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간헐적인 노력이 있어왔지만 신앙인 안중근의 상을 한국 교회의 토양과 영성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는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이다.
한편으로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회장 함세웅 신부)를 비롯, 사단법인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등 뜻있는 신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이 추모미사와 국제학술대회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안의사 의거와 사상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꾸준히 나서고는 있지만 일반 신자들 사이로 확산시키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회에서 손 놓고 있는 사이 오히려 타 종단 등에서 안의사 연구와 현양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어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세계일보가 이미 지난 1992년부터 ‘안중근 의사 여순 순국유적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며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에 나서는가 하면,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는 뤼순감옥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어 한국 교회의 대응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교회 차원의 관심·자세 전환해야
하지만 신앙인 안중근과 관련한 교회와 신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차갑다고 할 정도로 식어 있다. 이 때문에 안의사를 모범적인 신앙의 사표로 재해석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미래사목연구소 황종렬 복음화연구위원장은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의식의 통합, 아시아의 평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가는 흐름이야말로 이 시대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앙살이 방식을 보다 더 건강하게 구축해 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황위원장은 특히 “안의사는 평신도사도직의 전망을 새롭게 열어젖힌 선구자로서 그의 신앙 실천과 민중, 민족 사랑은 시민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신자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의사의 삶을 토착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외국어대 신운용 강사는 “안중근의 종교관은 이미 천주교 교리에 따라 순교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한계성을 넘어 한국 사회 내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전 민족적 범위로 확대되었던 것”이라며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의 위치와 의미는 ‘외래 종교사상의 토착화·민족화의 전범(典範)’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앙인 안중근에 대한 학계의 이러한 평가와 제언에 비해 그간 한국 교회 차원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자세의 전환이 요청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한국 교회는 전 교회 차원의 정기적인 기념행사 하나 없이 안중근에 대해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회사 안에서도 돋보이는 안의사의 철저한 신앙관과 순교영성 등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그의 삶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를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과 연결시켜 나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아울러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표상으로 신앙인 안중근을 새롭게 되살려낼 때 한국 교회는 보다 풍성한 영적 자산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황종렬 박사
“안중근의 이토 저격 의도는 ‘정의의 하느님’ 위한 협력”
“안중근 본인에게 토착화적 의식은 없었습니다. 다만 시대의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 무엇을 바라시는가에 대한 답을 구했을 뿐입니다.”
황종렬(레오?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박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하느님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생명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은 ‘정의의 하느님’ 뜻에 협력하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을 투신해 의거를 일으키고 믿음을 육화시킨 안중근 신앙의 핵심은 무엇일까?
황박사는 안중근 신앙의 핵심은 ‘상선벌악(賞善罰惡)’에 있다고 했다. 즉 선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안중근 신앙은 ‘하느님의 정의로움은 생명의 다스림에 근거한다’는 깊은 차원의 것으로 의거도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안중근이 옹진군민을 수탈하는 김중환(경성의 전 참판)에게 항거하는 등 군인의 ‘충·의’ 직분을 잊지 않았으며, 감옥에 갇혀서도 교리를 정리하며 신앙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이는 안중근이 형식적 신앙이 아닌 내면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같은 노력은 오늘날 가톨릭 평신도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말했다.
황박사는 안중근 의거가 평신도에게 던지는 의미로서 우선 ‘공공선’을 찾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현대 신앙생활과 달리 안중근은 민족의 고통을 하느님의 정의와 연계해 성찰했다”고 말했다.
둘째, ‘교회에 대한 사랑’이다.
안중근은 사형 전, 뮈텔 주교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뮈텔 주교는 안중근에게 성사를 준 빌렘신부를 성무집행 정지했던 한국교회 지도자였다. 편지는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영도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서 민족 복음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황박사는 “안중근은 민족 복음화를 위해 어떠한 비난도 없이 교회 지도자를 신뢰했고 아픔마저 삭혔다”며 “이같은 깊은 영성을 오늘날 평신도들이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의거 100돌을 앞두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에 대해서도 교회의 연구가 발맞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중근은 중국, 북한 등 동아시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며 “그의 신앙은 교회가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하나의 예언자적 목소리”라고 말했다.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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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의 장면을 묘사한 화보(일본 도쿄 발행 ‘특집 화보’ 1909년 11월 4일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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