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된 후 생긴 습관 중 하나가 ‘영화보기’였다. 저녁미사와 교리가 끝나는 평일 밤 휴대폰 문자 번개를 보내 교리교사들이나 청년들과 함께 심야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영화일까? 가장 큰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술을 전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주량이 다른 사람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처지라서 술로 친교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생각 한 것이 바로 ‘영화보기’였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까!
어떻든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얻는 효과가 의외로 많았다. 나처럼 술 못하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고, 술로 인한 부작용도 없었다. 건강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무엇보다 내가 영화비를 내면 동행했던 교사나 청년들이 자연스레 음료수나 팝콘을 사게 되니 경제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렇게 젊은이들과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이 생겼다. 한 번은 주임 신부님 몰래 본당 승합차에 교사들을 가득 태워서 심야영화를 보러 갔었다. 밤에 몰래 차를 쓰는 것이라 조심스러웠는데, 그날따라 영화관 주차장이 꽉 차서 도저히 차를 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근 성당에 주차하러 갔다가 그만 가로등과 박아버렸다. 결국 그날 이후로 밤에 허락 없이 본당 차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차가 없다고 영화 보는 걸 포기하랴! 이후에도 밤에 영화 보러가는 일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를 못 본 지가 수개월이 지났다. 처음 청년 담당 신부로 발령을 받아서 시내로 나올 때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수십 개 영화관이 있어서 좋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본당을 떠나게 되자 영화를 같이 볼 사람까지 사라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년담당 신부에게는 본당 청년들만큼 쉽고 편하게 만날 사람이 없었다.
한 번은 서른 명 남짓 되는 교구 봉사자들에게 본당에서처럼 “얘들아, 영화 보러 가자!”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영화 보겠다고 답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신부님, 다른 약속이 있어요”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사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두어 번 퇴짜를 더 맞고 나서야 ‘아, 내가 본당 보좌신부가 아니구나!’하며 사실을 깨달았다.
청년담당은 본당 보좌신부와는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청년담당을 한지 1년 반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아직까지는 마음만 앞서지만 조금씩 내 자리를 찾고 있다는 확신은 있다.
이렇게 어설프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런 사실이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서운하고, 어떤 때는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시행착오가 곧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횟수만큼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주위에 있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이제는 “얘들아, 영화보자”가 아니라, “기도하자, 함께하자, 사랑하자, 하나가 되자!”고.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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