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의 차·사람 모여
다양한 풍경 그려내는 곳
때론 물품보관소도 됐다 때론 네비게이션 역할도
빡빡한 근무일정 힘들어도 고객 웃음 보면 행복
성당 가는 차량 매 주일 정체 “가급적 대중교통을”
30분 기본 요금이 2000원, 추가 10분마다 1000원. 조금 비싼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땅값이 비싸다는 명동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동 성당 옆 400여 평 공간의 ‘나눔 주차장’에는 세상 모든 인간 군상들이 모여든다. 서울대교구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스쳐 지나갔을 명동 주차장.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300여 대의 각양각색 자동차들이 신앙 동네, 명동에서 만들어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 06:00
참 많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그 수만큼이나 외양들도 제각각이다. 가격이 7~8억 원대에 달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승용차 ‘마이바흐’에서부터, 50만원대 중고 소형차까지. 하지만 주차비에는 차별이 없다. 대형차든 소형차든 늘 30분 기본요금 2000원이다.
천주교 신자임을 나타내는 ‘내 탓이오’와 ‘ME’ 스티커를 붙인 차량, 불교 신자임을 나타내는 ‘맑고 향기롭게’ 스티커를 붙인 차량, 대순진리회와 대종교, 개신교회 스티커 까지…. 종교도 제각각이다.
어둠을 주차장에서 보낸 차들이 하나 둘, 아침 햇살을 가득 받는다.
주차장 사무실에 불이 켜진다.
# 09:00
바쁘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3명이, 저녁 6시 이후 자정까지는 2명이 교대로 일한다. 잠깐 사이에 10여 대의 차가 들어오고 나간다. 뛰어 다녀야 한다.
“열쇠는 차안에 두고 내리세요.”
신속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주차하는 일은 주차원들의 몫. 모두 2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보니 주차에는 달인이 됐다. 하지만 늘 긴장해야 한다. 실수로 차가 조금이라도 긁히는 날이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이다. 하지만 주차원들은 쉴 틈이 없다. “차들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 마음 편하게 식사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식사는 눈치껏 알아서 교대로 급하게 ‘후루룩’ 때워야 한다. 365일 무휴. 넉넉한 공간, 주차장은 그렇게 숨가쁘게 돌아간다.
# 12:00
별의별 사람 다 있다.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온다. “기름 가지고 왔어요.” 주차장까지는 잘 굴러 왔지만 정작 나갈 때는 기름이 떨어져 주차장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차들이 있다. 차가 고장 날 경우에는 견인차도 들어온다.
잠시만 맡아 달라며 주차원들에게 물건을 맡겼다가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무실 한 켠에는 수개월째 찾아가지 않은 컴퓨터 모니터, 쇼핑백, 가방들이 가득하다.
주차원들은 또 네비게이션이 되어야 한다. 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길을 물어온다.
주차장 한쪽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들이 주차장을 떠날 때 차안에 있던 쓰레기를 모두 내려 놓고 가는 탓이다. 하루에만 대형 쓰레기 봉투 3개가 가득 찬다.
주차요금을 내지 않고 ‘쌩’하고 도망가는 차들도 있다. 그럴 때면 주차원들은 그저 ‘허허’ 웃는다.
어느 영업장이든 마찬가지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단골은 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명동 칼국수를 먹기 위해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남에서 차를 몰고 와 이곳을 찾는다. 매번 주차장을 찾을 때 마다 주차비는 정확하게 2000원이다. 식사할 시간 30분만 정확히 주차하고 다시 돌아간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 15:00
맥이 빠진다. “어이, 차 잘 관리해줘.” 다짜고짜 반말이다.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전체 손님 중 주차원에게 반말하는 사람은 약 30%. 세 명 중 한 명 꼴로 주차원들을 아랫사람 부리듯 한다.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고급차를 기사 없이 직접 몰고 온 이들이 더하다. 주차장에선 차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말(言)이 그 사람을 드러낸다.
조금 전 반말하던 사람, 자세히 보니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끼고 있다.
# 18:00
편하다. 주차장 담에 개나리가 만발이다. 명동성당 울타리를 넘어오는 호박가지에서는 호박도 기대할 수 있다. 100년은 넘어 보이는 주차장 한켠 은행나무는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약속한다. 모처럼 시내 나들이에 나선 명동 거리의 사람들의 얼굴도 밝다. 마음 밝은 사람들도 많다.
“명동처럼 번화한 곳에 이렇게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정말 고마워요. 명동에 차를 가지고 와서 주차할 곳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거든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운전자가 주차증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는다.
# 21:00
주차장 앞 명동길이 북새통이다.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차, 빠져 나오는 차, 명동성당 앞을 지나 남산 1호 터널로 빠지려는 차가 한 데 엉킨 탓이다. 명동상인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일이면 이곳 정체가 더 심해져요. 명동성당에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주일에 명동에 올 때는 차를 안 갖고 왔으면 좋겠어요.”
2년째 주차원으로 일하면서 현재 아내와 함께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있다는 김종화(41·예비신자)씨는 “주일 명동 성당 미사 참례자들이 가지고 오는 차 때문에 명동 일대가 혼잡한 만큼 신자들은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24:00
각자 사연을 가지고 명동으로 몰려들었던 차들이 하나 둘 떠난다. 숨쉬기 어려웠던 주차장이 공간을 확보하면서 약간은 편안해 한다. 명동을 찾는 수많은 군중들과 하루종일 전쟁을 치른 주차원들도 조금 편안해 하는 모습이다.
주차장 사무실 작은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통이 이뤄진다. “얼마지요?” “예, 1만원입니다.” 그렇게 명동 성당 옆 주차장에선 오늘도 차 한대가 쉬었다 간다. 이제는 주차장이 문을 닫을 시간. 주차원들이 명동성당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성경을 함께 펴든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 32).
사진설명
▶명동 나눔주차장 전경. 봄을 맞아 개나리꽃이 만발해 명동을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밝게 만든다.
▶요금정산소 안에서 김종화씨가 일하고 있다. 2년째 근무중인 김씨는 현재 아내와 함께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 옆 ‘나눔 주차장’ 요금 정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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