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안에서 신앙 정체성 확립 힘써야
세계적으로 이주 노동·국제 결혼 급증
다원주의사고 심화…종교적 혼란 야기
신앙을 ‘선택사항’으로 여기기도
종교 정체성 성찰·실천 뒤따라야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지난해 말 성탄을 앞두고 ‘복음화의 몇 가지 측면에 관한 교리 공지’라는 문헌을 발표했다. 이 문헌을 통해 교회는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소명 중 하나인 복음 선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하고 있다.
이 문헌이 표명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복음 선포의 소명은 이미 교회가 설립된 이후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핵심적인 신적인 부르심으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이렇게 그 소명의 중요성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음은 그에 대한 인식이 퇴색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문헌의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문헌 자체에서도 명확하게 표명되고 있듯이 복음화의 사명에 대한 퇴색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은 “오늘날 교회의 선교 사명에 관한 ‘혼란’이 점증하고 있다”면서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명시적으로 표명하거나 교회에 공식적으로 통합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도록 장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현대 사회와 현대인의 ‘혼란’에 대한 이같은 심각한 우려는 무엇보다도 다원주의적 사고와 종교의식에 그 가장 큰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다원주의적 사고는 현대 사회의 개방성, 심화된 개인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오류를 반영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미래 사목을 전망하는데 있어서,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원주의적 성향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
사실상 한국 사회와 문화 안에서 다원화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근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의 사회 흐름은 정보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우리나라의 정치적 변화, 세계화의 진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더욱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우선 전세계적인 현상인 이주민의 증가는 단일 민족과 단일 전통의 한국 사회 특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주 노동과 국제 결혼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우리 사회 안에서 이주민들의 비중은 전에 없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통계로 볼 때,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이주민의 수는 무려 7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서의 다문화 다인종 사회가 이제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결국 이들 이주민들, 곧 인종과 문화, 종교와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이행함으로써 교회는 그러한 다원적 사회 안에서 어떻게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접근할 수 있는지가 주요한 사목적 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다원주의
특별히 그리스도교 교회와 연관해 직접적인 문제로 살펴볼 것은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한 우려이다. 앞서 언급된 교황청 문헌 역시 이러한 다원주의적 종교 의식과 관련해,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촉구하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와 그 안의 종교 현황은 오래 전부터 매우 다원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한국 사회와 전통 안에는 무교와 민간 신앙 형태를 포함하는 토착종교에서 시작해 불교와 유교 등 뿌리깊은 종교 전통 외에 이슬람교, 원불교, 그리스도교 등이 폭넓게 공존하고 있으며, 지난 수십년 동안에는 신흥 종교, 유사 종교 등 다양한 종교적 신조들이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도교와 불교, 유교 등 한국 사회 안에서 비교적 그 영향력이 큰 거대 종교들은 새로 나타나는 종교 혹은 영성적 흐름들에 대해 경계해야 할 정도까지 다원주의적 종교 현상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다원주의적 풍조는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개인적 선택의 가능성을 확대시켜준다. 다원주의적 사고가 일반화된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톨릭 교회, 가톨릭 신앙은 많은 영적 선택 사항 또는 가능성 중의 단지 하나일 뿐인 것으로 여겨진다.
새 천년기의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있어서 현대 세계와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 교회의 가장 강력한 도전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적 사고방식과 상대주의적 가치관이었다. 교회일치운동을 저해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고유한 구원 업적을 강조한 몇몇 문헌들을 발표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신흥, 유사영성운동
우리 사회의 경우에, 다원주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이른바 신흥영성운동, 혹은 유사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아직 그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이러한 사이비 영성운동은 이미 우리 사회 안에, 심지어 그리스도교 교회를 포함한 기성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도 이미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불행하게도 그 가장 큰 피해 집단은 가톨릭 교회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구체적인 피해 사례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들 신흥, 혹은 유사영성운동들 안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그것이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다원주의적 사고방식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교회가 상존하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종교 의식에 대한 사목적 차원의 대응 방안을 심사숙고하고 단호하게 실행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그 여파는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다.
정체성의 확립
다양성은 현대 사회와 세계에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추세이다. 절대성을 지닌 진리의 선포를 표방하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달갑지 않은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평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다양화된 사회 상황 속에서 교회는 그 다양성과 다원성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고유한 정체성의 더욱 확고한 자리매김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한껏 꽃피우면서도 토착 종교와 고유한 문화, 현대 사회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적, 영성적 흐름들에 대응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사목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 교회의 미래 사목을 전망하고, 그 계획과 방향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이 점을 명확하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교회가 과연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체성과 삶을 얼마나 체득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과 그 실천이 앞으로의 사목적 방향 수립의 한 축이며, 그러한 고유성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가 두 번째 축이 될 것이다.
사진설명
▶수원 엠마우스 이주노동자의 집에서 한국어 교실 초급반 이주노동자들이 팔을 벌려 몸으로 'ㅏ'를 만들고 있다.
▶2002년 9월 아린제 추기경이 한국의 집에서 7대 종단 대표자들과 함께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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