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벽 넘어 ‘꿈’ 펼칠거예요”
서울 강동구 고덕동. ‘성지작업활동시설’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숨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볼펜 뚜껑과 스프링, 몸체를 조립해 볼펜을 만들고 다른 편에서는 서너 명이 속옷을 포장하고 있다. 좌변기 부품을 조립하는 작업은 자칫 손이 다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작업임에도 실수라도 있을까 주의를 기울이며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 모두가 지적장애인이다.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성지작업활동시설’은 근로의욕은 있지만 장애 때문에 일반사업장에 고용되기 어려운 성인 장애인들의 자립작업장이다. 특히 이곳은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자립작업장이라는 데 의미를 갖는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애인들이 일반인과 똑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차별 없이 살아가기에는 넘어야할 벽이 너무나 많다. 때문에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피와 땀 그리고 말 못한 고충이 한데 섞인 이곳의 15년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은 25명. 오전 9시 아침기도로 시작하는 일과는 오후 4시30분까지 계속된다. 출퇴근을 매일 기록하고 작업성과에 따라 월급도 차등 지급되는 등 겉모습은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하는 일 대부분은 단순한 수작업이라 월급은 10만 원에서 적게는 3만 원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곳 장애인들의 모습은 어떤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밝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존재로 대접받지 못한 채 살아가던 이들에게 작업활동시설은 소중한 일터이자 보금자리다.
성지작업활동시설과 성지공동생활가정을 담당하고 있는 성지공동체 정진옥(소화 데레사) 원장은 “일반인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삶이 장애인들에게는 평생 꿈꿔온 소원”이라며 “작업활동시설을 통해 인간답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 뿐 아니라 이곳의 종사자들에게도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성지작업활동시설이 풀어야 할, 하지만 풀기 힘든 과제도 남아있다. 정책에 따라 2010년까지 작업활동시설을 ‘주간보호시설’이나 ‘보호작업시설’로 전환해야 한다. 작업능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의 자립을 북돋기 보단 그저 수동적 보호 대상으로만 여기는 정책인지라 시설 종사자들은 안타깝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다. 이렇다 할 도움 없이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형편에서는 현 인원도 버겁다. 15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장애인들도 편견과 고칠 수 없는 장애라는 장벽 앞에서 더 나은 꿈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정원장은 “장애를 가진 이들도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받고 그들이 존재감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며 “장애인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남은 생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골프채 기증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 과격한 운동이 힘든 지적장애인을 위해 성지작업활동시설은 올해부터 야외에서 ‘파크골프’를 시작할 계획. 하지만 장소(한강시민공원)는 있는데 고가(高價)의 골프채를 구할 수 없어 애태우고 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의 야외활동에 꼭 필요한 중고 골프채를 기증해 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02-481-8666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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