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경이로움 체험하고 나눕시다”
거저 주어진 선물 감사할 줄 모르는 세태 안타까워
복음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꿈·행복임을 깨달아야
자기 희생, 배려, 겸손, 정결, 청빈…. 그동안 우리가 올바르다고 신앙해 왔던 가치관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합리와 실용으로 포장된 물질주의와 능력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있고, 향락주의와 이기주의가 삶의 가치를 왜곡 변질시키고 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큰 스승’을 만났다. 대수도원장(아빠스). 초기 교회에서 아빠스는 사부, 혹은 영적 스승, 영적 아버지로 불렸다. 성소주일이던 4월 13일 몸 깨끗이 씻고 마음 가지런히 하고, 서울 장충동에서 이형우(시몬 베드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아빠스를 만났다.
‘큰 수도자’의 기품이 엿보인다. 호탈한 웃음, 넉넉한 외모와 풍채 때문만이 아니다. 말 하나하나에서 ‘기도’가 느껴진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왜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 시대의 부르심(성소)은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갑작스런 많은 질문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가르침’이 나온다.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되살려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을 위해 이아빠스가 꺼낸 화두는 ‘복음’과 ‘감사’ ‘증거’였다. “어느 한 자선 사업가가 강남에 있는 아파트 10채를 선착순 무료로 나눠 준다고 가정합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서울시내 교통이 마비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통해 아파트 보다 더 엄청난 것을 주시겠다는데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횡재’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아빠스는 복음을 “너무 기뻐서 입을 다물 수 없는 경이로움이자 감동, 억누를 수 없는 기쁨 그 자체”라고 말했다. “작은 생일 선물 하나를 받아도 기뻐하면서 왜 이처럼 높으신 분이 주는 큰 선물에는 감사할 줄 모르냐”며 안타까움도 함께 드러냈다. “복음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는 경험해 본 이들만 알 수 있습니다.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물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런 이들은 불행합니다. 하느님의 큰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이아빠스는 또 “감사할 줄 알면 모든 것이 경이롭게 보인다”고 했다. 떠오르는 태양도, 들에 피는 꽃 한송이도, 내가 숨 쉬는 것 자체도 경이롭고 감사하고 찬미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느끼면’, 세상의 ‘섭섭한 일’ ‘마음 아픈 일’ ‘괴롭고 슬픈 일’ ‘안타까운 일’이 모두 없어집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신앙인은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넘치는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지니기에 한없이 대범해 집니다.”
이아빠스에 따르면 세상의 복음화는 이런 복음화된 개개인의 증거를 통해 이뤄진다. 이아빠스는 인도의 키 작고 볼품없는 한 할머니 수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더 테레사를 세상이 존경하는 것은 그녀가 외모가 잘났거나, 강론을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죽어가는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볼 수 있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자신의 삶으로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마더 테레사를 보고 진정한 삶의 가치, 하느님 존재를 느낍니다.”
단 1명의 작은 증거가 교회를 일으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해 시기 순교자들은 목숨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증거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죽음이 아닌 삶으로 신앙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아빠스는 “따라서 만약 이 세상이 복음적이지 않다면 이는 모두 신앙인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증거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증거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아빠스에 의하면 생명을 파괴하는 과학실험, 인명을 경시하는 다양한 풍조 등이 모두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여기에는 특히 교회 성직자와 수도자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아빠스는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종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했다.
“착한 목자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목자가 아니라 머슴이요 종입니다. 양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의 양들이 아닙니다. 그분의 양들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그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이아빠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그리고 작심한 듯, 세상에 외친다.
“기뻐하십시오. 복음이라는 상상하지도 못할, 엄청난 선물을 은혜로 받았는데 왜 기뻐하지 않습니까. 복음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복음의 경이로움을 매일매일 몸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을 세상과 나누십시오. 복음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이자, 꿈이자, 행복입니다”
당초 1시간 예상했던 인터뷰가 2시간을 넘겨 끝났다. 이아빠스가 환하게 웃으며 수도원으로 돌아선다. 그 뒷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 아빠스 그리고 이형우 아빠스
아빠스란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베네딕도회, 시토회, 카말돌리회, 트리피스트회)과 일부 특정 수도회들(프레몽트레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엄률수도회)에 속한 자치 수도원의 원장을 일컫는 명칭. 아빠스는 아버지 라는 의미와 원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집트나 시리아 등 동방지역에서는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 사부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특히 은둔 수도자들의 스승을 일컫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1946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이 아빠스는 1965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 1974년 종신서원을 받았다. 이후 1977년 사제품을 받은 이 아빠스는 로마 아우구스티아눔 대학에서 교부학과 교부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1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4대 아빠스에 선출됐다.
교부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 아빠스는 지난 수십년간 교부학 관련 문헌을 번역하는 등 교부학 발전에 애쓰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교회 최대 출판 사업으로 평가되는 ‘교부들의 성경 주해’ 출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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