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 끝에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
길이 36미터 폭 13미터에 등장인물만도 300여 명
아담 창조, 노아의 홍수 등 창세기 주요장면 묘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술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미켈란젤로를 꼽겠다. 천재 예술가에 대한 무작정의 칭송은 위험의 소지가 있겠지만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의 경우라면 표현 가능한 그 어떤 칭송도 부족해 보인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보통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곳에 가면 긴 줄을 선 인파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사시사철 만나게 된다. 긴 기다림 끝에 바티칸에 입장하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바로 ‘Cappella Sistina’(시스틴 소성당)라고 쓰인 화살표이다. 시스틴 소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5년 경 건축한 교황청의 경당이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곳이다. 이곳에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조각가였는데 그에게 일을 맡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게 했으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미술가들을 기용하여 로마에 르네상스 예술을 꽃피게 했다.
천장화 착수 직전 미켈란젤로는 이 교황님의 주문으로 등신대 이상의 조각이 40점이나 들어가는 거대한 규모의 율리우스 2세 묘지건축을 계획하고 있었고, 일부 조각은 이미 완성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당시 베드로 성당 건축의 총감독이었던 브라만테는 교황님이 틈만 나면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칭찬하자 시기심에 사로잡혀 그림 경험이 없는 그에게 그림을 맡겨서 골탕 먹일 궁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며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미켈란젤로는 그 넓고 높은 천장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으니 브라만테의 계획이 허사가 되었음은 물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인가 보다.
당시 미켈란젤로의 화가로서의 경력이라야 미술에 입문할 때 피렌체에서 기를란다요라는 선생 밑에서 공부한 1년이 전부였다. 그는 물감 개는 일을 도와줄 조수 한 사람만 데리고 혼자서 천장화 그리는 일에 착수했다. 4년에 걸친 외로운 사투였다. 천장화란 누워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4년 동안 누운 자세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몸은 굳고 시력은 극도로 나빠졌다.
천장화가 완성된 후에도 작가는 몇 달 동안이나 누워서 밥을 먹고 글을 읽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중간에는 그 누구도 입장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심지어는 교황님조차도 작품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4년 후인 1512년 마침내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님을 포함한 당시의 사람들은 한 인간의 놀라운 능력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시스틴 천장화는 총 길이 36미터, 폭은 13미터이며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사람크기 이상의 인물들만도 300 명이 넘는다. 천장 중앙 부분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아담의 창조를 비롯하여, 하와의 창조, 뱀의 유혹, 낙원에서의 추방, 노아의 홍수 등 창세기의 주요장면이 9개의 구획에 그려졌다.
이들 장면을 갖은 자세를 취한 젊은 남성 나체들이 둘러싸고 있고, 천장의 가장자리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한 5명의 무녀들과 이사야, 에제키엘, 예레미아 등 8명의 구약의 예언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예언자와 무녀 사이에는 삼각형의 공간 안에 예수님의 조상들이 그려져 있고, 천장과 맞닿아 있는 벽면의 반원형 안에 다시 예수님의 조상들을 그려넣었다. 어린아이부터, 청년, 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유형이 등장하는 소우주이다.
이들 장면 중 대표작인 ‘아담의 창조’는 인류 최초의 인간에게 조물주가 생명을 불어 넣는 모습인데 하느님의 손끝과 인간의 손끝이 달락말락하게 그려져 있다. 아담의 인체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가 나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며, 흰 수염을 날리며 천사들에 의해 들려져 날아오는 하느님은 우리가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있는 바로 그 분의 모습이다.
천장화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하나하나는 당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더러 아름답고 완벽해서 인체 묘사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쓴 바사리는 1550년에 출판된 ‘예술가 열전’에서 “예술이 새로운 광명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미술가들이 해야 할 일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라 하였다.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켈란젤로가 다 이루었으니 이제 그의 작품을 본받는 것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충고인데 이런 상황 앞에서 창조가 생명인 미술가들은 절망스러웠을 법도 하다.
시스틴 천장화는 미술가들이 그토록 달성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이자, 매너리즘과 바로크 양식의 시작이었다. 하나의 양식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양식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음악이건 미술이건 예술의 양식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과 예술가들의 고뇌가 동반되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이 단 4년 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불가사의 할 따름이다.
시스틴 천장화는 미켈란젤로가 33세에 착수하여 37세에 완성하였다. 그것은 작가의 긴 생애 중 가장 왕성한 창조의 힘을 보여준 시기의 작품으로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을 바티칸으로 초대하고 있으니 예술가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
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이번에 소개된 ‘천지창조’를 비롯해 ‘노아이야기’ ‘최후의 심판’ 등의 벽화, ‘피에타’ ‘성가족’ ‘다비드’ 등의 조각 등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동서고금의 수많은 예술품 중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그는 어떤 재료를 다루든, 어떤 내용을 담든 거침없이 열정을 발휘하며 웅장하고 숭고한 작품들을 남긴 인물이었다.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 또한 시인이기도 했으며, 살아있는 동안 전기가 두편이나 출판될 만큼 추앙받은 예술가였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초인적인 제작력 외에도 외골수라고 비꼬임을 당할 정도로 철저한 완벽주의자적 기질이 있었다고. ‘천지창조’를 그릴 때에도 까마득히 높은 천장 바로 밑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는 미켈란젤로에게 그의 제자는 “선생님, 밑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누가 본다고 그렇게 세세하게 그리십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내가 보잖아”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최근에는 DVD가 널리 보급되면서 세계의 유명 미술품 감상도 쉬워진 부분이 있다. 일반서점 등에서 판매하는 DVD ‘세계의 미술관’에서도 미켈란젤로와 시대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문가의 해설과 클래식곡을 곁들여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DVD에는 해설 외에도 작가정보도 따로 담아 교육 등에도 유용하다.
그림설명
▶미켈란젤로, 시스틴 천장화, 프레스코화, 13 x 36 미터, 바티칸, 시스틴 소성당.
▶시스틴 천장화 중 일부. '아담의 창조'(2.8×5.7 미터), 중앙 좌측 첫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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