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짓눌려 ‘사회적 약자’로 내몰린다
엄마 한국어 부족으로 자녀 언어 발달 지연
‘왕따’ ‘중퇴’ 점차 심각 … 관심·배려 절실
혼혈(混血). 모든 사람은 다른 피를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다. 엄격히 말하면 모두가 ‘혼혈’인 것이다. 하지만 혼혈인, 혼혈아라는 말은 사람이 나눈 ‘백·황·흑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을 가리킨다.
4월 27일 이민의 날을 맞아 이민 아닌 이민, 혼혈이라 불리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해 알아본다. 다문화가정 아이들, 그들도 한국인인 것이다.
가정 내 어려움
행정자치부 2007년 외국인주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하 국제결혼가정 자녀는 4만425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만 6세 이하가 2만6445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해 급증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사목적 배려 또한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이번 이민의 날 담화문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두고 “이들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이중소속의 현실에서 온다”고 지적했다. 이주교는 이중소속의 문제를 그들에게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사회의 세포격인 가정에서부터 어려움에 부딪친다. 우선, 자녀교육의 어려움이다. 엄마들의 한국어 부족은 자녀들의 언어발달을 지연시켰다.
베들레헴 어린이집(국제결혼가정 자녀 및 이주노동자 자녀 24시간 보육시설)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한 사례로 A군(4)은 말을 하지 못해 자폐증으로 판단했을 만큼 심각한 언어발달저하 현상을 보였다. 책임자 권오희 수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언어발달은 평균 1년~1년 반 가량 늦다”며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한글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결혼이민여성 대부분의 경우가 저임금과 노동강도가 높은 일을 하며 양육책임까지 떠맡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불화로 인한 이혼과 고령의 남편이 사망한 이유 등으로 한부모 가정이 된 경우, ‘친정’이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2007년 베들레헴 어린이집 아동현황에 따르면 입소원인으로 총인원 120명 중 부모문제가 62명, 가정폭력 11명, 부모건강 4명, 경제문제 37명, 배우자 사망 4명, 기타 2명으로 집계됐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허윤진 신부는 “다문화가정의 엄마들도 우리와 같이 보통가정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들은 한국인 엄마보다 해결방법의 범위가 좁아 같은 어려움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의 어려움
결혼이민여성의 이같은 어려움들은 한국사회 안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 정서와 함께 아이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따라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10~20년 이내 사회의 모습은 급변하고 파장 또한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행정자치부 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가정자녀 4만4258명 중 만 6세 이하 2만6445명 외에도 만 7~12세 이하 1만4392명, 만 13~15세 이하 2080명, 만 16~18세 이하 1341명으로 알려졌다. 조사에서 제외된 아이들까지 고려한다면 10년 내 사회활동을 시작할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엄청난 숫자다.
허신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만드는 것과 같다”며 “지금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는 것이 사회적비용 또한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 현상도 문제다.
대전교구 이주노동자사목을 전담했던 강승수 신부(대화동본당 주임)는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17.6%였다”며 “그 이유로는 엄마가 외국인이라서가 34.1%, 의사소통이 잘 안돼서가 20.7%였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지금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표면화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01년 펄벅재단 조사결과도 다문화가정 자녀의 초등중퇴율은 9.4%, 중학교 중퇴율은 17.5%로 보고됐다. 내국인 가정 자녀 중퇴율이 1.1%임을 비교해볼 때 이는 심각한 문제를 예견한다.
최근 정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다각화하고 있다.
교회기관과 연계해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 설립, 방문도우미 지원사업 등 아이들의 올바른 양육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로 미취학·취학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보육시설 확충, 경제기반 보조,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언어프로그램 마련 등 많은 과제가 산재해있다.
본당의 사목적 배려와 함께 신자, 특히 구역·반장들의 따뜻한 관심도 요구된다.
허신부는 “선뜻 다가서기 어렵지만 결혼이민여성과 아이들을 이웃으로 환대하고 성당행사에 초대하면 좋을 것”이라며 “그들이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문제는 우리와 먼 곳에 있지 않다. 결혼이민여성과 자녀도 또 다른 모습의 한국인으로 나와 내 자녀와 함께 살아갈 사회의 일원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키울 것인가, 사회의 일꾼을 키울 것인가’라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관심 하나에 달렸다.
◎서울 노동사목위 베트남 레티벡뚜엇 수녀
“가족·이웃 관심 가장 중요”
“엄마와 언어소통 단절로 이해·관심 받지 못하는 아이들 모습에 안타까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베트남 레티벡뚜엇 수녀(안나·사랑의 성십자가 수녀회).
2006년 한국에 와 베트남 결혼이민여성과 자녀들을 사목하고 있다. 그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가 ‘언어’라고 말했다.
“한 베트남 결혼이민여성을 만났어요. 자녀가 3살, 5살인데 베트남어도, 한국어도 못 합니다. 3살짜리 아이는 인사조차 하지를 못했어요. 참 답답했습니다.”
그는 언어가 ‘이해’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인데 엄마와 언어소통을 할 수 없어 이해와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베트남 여성으로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생각과 문화가 다른데 이해를 못하는 남편들이 야속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하루에 3000원씩 생활비를 받아 사는 여성, 시댁식구들의 성화에 아기를 미국으로 보낸 여성 등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결혼이민여성들의 사연을 들었다.
레티벡뚜엇 수녀의 가장 큰 걱정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이웃의 관심 같아요. 아기, 엄마 모두 지금 여기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여기서 살 한국인인데 말이죠.”
☞바꿔 불러요
혼혈인, 혼혈아, 코시안 → 다문화가정 아이들
단일민족국가를 부각시키는 한국사회의 차별적 의미가 내포돼있다. 애써 구분 짓는 것부터 고쳐가야 할 태도다. 모두 같은 사람, 한국인인 것이다.
(UN이주민권리협약비준촉구 캠페인 참조)
사진설명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 여성 자녀를 돌보는 뉴하우스에서 아이들이 김점연 수녀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의 올바른 양육을 돕기 위해 미취학·취학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정부와 교회 차원의 보육시설 확충이 절실한 실정이다.
▶청주교구 연수원 개원 10돌 기념으로 열린 국제결혼부부 피정.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민의 날 담화를 통해 교회 공동체가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을 연민으로 따뜻이 맞아주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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