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성으로의 불림’ 올바로 인식하라
이웃 사랑하며 나 형성하는 것은 ‘궁극적 소임’
“진리는 단순”…그럴싸한 환상에 속지 말아야
이번 주에 기술하는 내용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 만큼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영성의 기초를 놓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지난 주에 ‘인간은 늘 이웃 혹은 세계와 역동적 관계에 놓여 있다’라고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인간은 늘 세계와 주고 받는 관계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없다. 인간은 이웃한 다른 인간과 그리고 이 세계와 또 자연과 늘 주고 받는 관계를 맺어 가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주고 받는 관계를 잘 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지 못한가가 관건이다. 이것을 잘 하면 인생을 잘 형성해 나갈 수 있고, 잘 하지 못하면 인생을 헛되게 살게 된다.
사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미리 형성해 놓으신 토대는 이것(잘 주고 받는 것)말고 또 다른 것은 없다. 주고 받는 것은 형성되도록 이미 섭리되어 있는 것을 함께 완성해 나가기 위함이다. 인간 개개인은 혼자 힘으로 스스로를 완성할 수 없다(형성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 은총 없이 진정한 행복(인간 형성, 완전한 인간 실현)에 이를 수 없다.
이같은 원리는 이웃과 자연, 세계에 똑같이 확장, 적용된다. 나는 독불장군식으로 나를 완성해 나갈 수 없다. 이웃과 자연, 그리고 세계와 서로 주고 받는 관계를 통해 나를 완성하고, 이웃을 완성하고, 자연을 완성하고, 세계를 완성한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만든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원리도 여기서 나온다. 이웃 사랑없이 나 자신의 형성이 없고, 이웃 또한 나에 대한 사랑 없이 자신을 형성 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궁극적 소임(영원한 부름, call)이다. 소임(召任)이 무엇인가. 불려서 부여 받은 임무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소임을 잘 깨달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이러한 ‘나’에게 주어진 소임을 파악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파악하고 느끼고, 묵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작은 의미로 알고 있는 ‘영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의 아드리안 반 카암 신부는 이러한 하느님에 대해 ‘형성하는 신적 신비’(Divine Forming Myster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 이 개념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경제’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9시 뉴스에서 ‘경제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도대체 경제가 뭐야?’
경제학 원리를 집대성한 국부론(國富論)의 저자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어느날 어떤 이로부터 “세계 경제가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경제는 경제학자나 시장상인, 정치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문제에 있어서 개개 인간이 혹은 몇몇 경제학자, 경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현대 경제학에서 경제는 더 이상 경제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는 정치, 문화, 종교, 예술 등 모든 인간 활동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가 나빠지면 그 해결점은 정치, 문화, 종교, 예술 모든 차원에서 모색되어져야 한다. 이처럼 경제 하나만 봐도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이다. 경제가 경제 한가지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듯이 하느님도 무한히 많은 관점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궁극적 실체다.
그래서 ‘신비’다. 단순한 신비가 아니라 ‘형성하는 신적 신비’다. 우리를 미리 형성시켜 놓으시고, 형성하도록 부르시고, 서로 형성하도록 이끄시는 그런 신비다. 우리는 이런 형성으로의 불림을 받았다. 모든 인간은 이 부르심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최근 일부 사이비 종교나 그릇된 신적 계시를 믿는 것은 이 소임 이외의 다른 거창한 무엇인가를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들이다. 이러한 잘못된 신심들은 상상이고 환상이다. 사람 머리에 뿔이 일곱개 달렸다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다. 환상과 상상을 관상 혹은 진정한 영성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럴싸한’ ‘거창한’ ‘화려한’ 것들은 대체로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진리는 단순하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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