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근원’인 하느님께 모두 바쳐라
세상 타락은 주님 배제한 인간 ‘자기 기만’ 탓
하느님 섭리 깨달아 순수했던 세상 되찾아야
사랑을 속삭이는 많은 연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 “말하지 않아도 네 마음을 알아.”
엄청난 착각이다.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 눈을 찡긋하는 여자를 보고 윙크한다고 착각할 수 있고, 배려와 친절을 나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얼굴이 잘생긴 것도, 능력이 뛰어난 것도 모두 스스로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착각 중의 착각은 뭐니뭐니 해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심리학 상담에서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가능성을 키우고 자신감을 북돋는 방향이 대세다. 물론 자신감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자신감은 어쩌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하는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것은 ‘자기 기만’의 측면이다.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한 우리 자신의 올바른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겸손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스스로의 발전도, 내면의 평화도 불가능하다. 인간은 참으로 오만하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스스로도 발전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고 허전하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신적인 토대를 내면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결코 우리가 이룩한 성공이나 주위의 평판 때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늘 자기 기만에 빠지게 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나 자신이 이기적이고, 내 가정, 내 국가, 내 민족에 대해 이기적이다. 그래서 바벨탑을 세우고, 전쟁을 하고, 타인을 험담하고,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고, 생명을 죽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바로 ‘불행’이다.
아버님과 아드님과 성령의 거룩한 삼위일체로 계시된 저 형성하는 신적 신비는 타락한 세계로 육화 말씀을 보내신다. 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와 아버님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이 세상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정화되고 완성될 수 없기에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화 강생하시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만 잘 되고 당신 가정만이 잘되고, 유다 민족만이 잘 되고자 하는 이런 패쇄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살과 피를 인류를 위해서 내어놓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33년이라는 짧은 시간, 이스라엘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늘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다.
인간은 그리스도 이후, 성령에 의해서 빛을 받아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자각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영은 성령의 비추임에 의해 되살아난다.
욕설, 미움, 질투, 시기, 욕심…. 우리는 공해와 쓰레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두 우리들이 만들어 세상에 뿌려 놓은 것들이다. 아무리 고고하게 살아가려 해도 이러한 쓰레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공해도 공해지만 인간 개개인 내면에 묻혀 있는 쓰레기 또한 만만찮다.
이런 공해와 쓰레기 속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일어선다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맑고 순수했던 원래의 세상을 바라보고,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지저분한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선 깨끗하다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깨끗한 원래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몸과 정신과 마음(영)을 하느님께 돌려야 한다.
하느님이 바로 이 세계의 기원이자, 내가 지금 여기에 있게 한 그 제1원인이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쌓이기 전 상태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
예수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않았다. 늘 성부와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는 기도를 가르치는 대목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고 하셨다. 넓고 높은 것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넓고 높은 것들의 기원으로 다가가야 한다. 물처럼 흐르고 산처럼 드높아야 한다. 그래서 바다를 보면서 하느님의 넓은 은총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자연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면서도 “오! 나의 하느님”이라는 기도가 나와야 한다.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게 마련이다.
지난 8주 동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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