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섭리에 감사 … 독자들 사랑·애독 당부”
- 장봉훈 주교(청주교구장)
“시복·시성 추진에 때맞춘 연재
널리 사랑받는 명작 되길 기원”
한수산 선생님이 집필할 소설 ‘아, 최양업’이 가톨릭신문에 연재된다하니 참으로 기쁩니다.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 추진에 때맞추어 귀한 글을 연재하는 집필자와 지면을 배려하신 가톨릭신문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32년 전 처음으로 최양업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1976년 첫 본당인 진천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성탄을 앞두고 배티공소에 판공성사를 주러 갔었습니다. 판공성사를 마친 후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4대째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시던 공소회장님은 배티 지역 인근에 산재되어 있는 유명·무명의 순교자 묘소들과 배티 교우촌에서 사목하셨던 최양업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최양업’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최신부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회사 사료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동안 한국천주교회사에 잊을 수 없는 이름, 이 땅에 가톨릭 신앙을 주추 놓은 착한 목자 최양업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최신부님은 한국천주교회사가 순교자 중심의 사관(史觀)으로 엮어져온 탓에 첫 한국인 사제요, 순교자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그늘에 철저히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사뭇 안타깝게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 후 16년이 지난 1992년 저는 두 번째로 최양업 신부님과 만났습니다.
최신부님의 첫 본당이요, 사목활동의 보금자리였던 배티성지에 초대 담당신부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성지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순례지 사목을 하면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전적인 도움으로 최신부님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들을 수집·정리하여 네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네 권의 책들 중 최신부님의 18통의 친필서한과 최신부님의 신학교시절 스승과 동료사제들의 편지와 글들을 정리하면서 최신부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신부님을 이 땅의 모든 신자들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시작된 사업이 하느님의 종 최신부님의 시복·시성 추진이었고, 또 하나가 최신부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출간을 통한 현양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보다 앞서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이 사랑하셨고, 한국 땅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께서 크게 쓰셨던 최양업 신부님을 현양하기 위하여 준비해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수많은 사람 중 소설가 한수산 선생님을 눈여겨보시고 그 마음에 뜨거운 열정을 불어넣으시어 소설 ‘아, 최양업’을 구상하도록 오묘히 섭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5월 11일 가톨릭신문 지면을 통해 첫 모습을 드러내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기해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박해시대에 신자들의 삶과 신앙을 그린 윤의병 신부님의 소설 ‘은화(隱花)’가 1939년부터 1950년 6.25전까지 경향잡지에 연재되어 많은 신자들의 사랑을 받고 신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던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2011년 최신부님 선종 150주년을 앞두고 가톨릭신문에 연재되는 한수산 선생님의 소설 ‘아, 최양업’이 많은 신자들의 사랑을 받고 깊은 감명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이 땅의 신학생들과 사제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울러 새로운 사제상 정립에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은 속으로 제 할 일을 계획해도 그것을 하나 하나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 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수산 선생님이 오랫동안 계획하고 구상하여 써내려가는 손끝에 하느님의 능력과 영감이 함께 하시어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는 명작이 탄생하기를 기원합니다.
■소설 ‘아, 최양업’의 주인공, 최양업 신부는…
희생적 삶 살았던 ‘땀의 순교자’
▲출생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1821~1861) 신부는 1821년 3월 10일 다락골 새터(충남 청양 화성면 농암리)에서 독실한 교우 최경환(프란치스코·1805~1839)과 이성례(마리아·1801~1840)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유학
최양업 신부의 어린 시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는 국내에 최초로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최방제(프란치스코), 김대건(안드레아)과 함께 15세 때인 1836년 12월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이듬해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한 최신부 일행은 본격적으로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서품
최양업 신부는 1844년 12월 중국 길림성의 소팔가자성당에서 김대건과 함께 부제품을, 1849년 4월 15일 그의 나이 28세 때 상해 서가회성당에서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사제품을 받았다.
만주 요동 등지에서 7개월간 지낸 그는 마침내 1849년 12월 초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의 일이다.
▲사목활동
조선으로 돌아온 최신부는 11년 6개월 동안 걸을 수 있는 날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의 127개 교우촌(공소)을 순회하며 지칠 줄 모르는 사목활동을 펼쳤다.
최신부가 1년 동안 만난 신자는 평균 5000여 명 정도로 당시 조선의 신자 수 절반을 상회하며, 어느 해에는 240명에게 세례성사를 베풀고, 4000여 명의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기도 했다. 아울러 신학생들을 선발해 페낭신학교로 보내는가 하면 순교자들에 관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거나 외국 선교사의 입국을 주선하기도 했다.
▲고난
최양업 신부는 1852년부터 1854년 사이의 사목활동에서 체포의 위기, 공소의 습격 등 잦은 박해 때문에 선교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 비참한 삶을 사는 신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했고, 더 많은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한 달 동안 나흘 밤만 자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다. 가짜 교우 때문에 능욕을 당하는가 하면, 동네에서 추방당하거나 고발되는 등 도처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죽음
극심한 박해를 피해가며 하루 80~100리를 걸어서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최신부는 1861년 6월 15일 식중독과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41세의 나이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당시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서 조선교회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던 최양업 신부의 죽음은 조선교회에 엄청난 손실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장례미사는 여러 선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주교 주례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충북 배론의 배론신학교 뒷산 언덕에 안장됐다.
▲성격·사상·영성
기록에 따르면, 최양업 신부는 타고난 심성이 차분하고 조용하며 내성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신부는 뿌리 깊은 ‘형제애’와 ‘인간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버려진 이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처지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최신부는 당시의 사회 구조에 도전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봉건 제도와 만민의 평등을 저해하는 양반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층의 그릇된 세계관을 바꾸기 위해서도 전력했다. ‘길위의 목자, 땀의 순교자’라 불리는 최양업 신부가 오늘날 사제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은 그의 희생적이고 영웅적 덕행의 삶 때문이기도 하다.
▲저술활동
최양업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는 여러 장의 라틴어 서신 19통을 비롯해 조선 순교자에 관한 자료 수집, ‘조선순교자전’의 라틴어 번역, ‘성교요리문답’ 및 ‘천주성교공과’ 편찬, ‘천주가사’ 저술 등의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진설명
▶한국교회 최초의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최양업 신부 사목활동의 보금자리였던 배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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