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 최양업’ 연재하는 한수산 작가의 최양업 신부께 드리는 편지
“이제 신부님을 만나러 갑니다”
“이 길을 가고 또 가서 마침내 이르게 하소서”
“최양업 신부 통해 우리 삶을 이야기 하고
쉬는 교우에게도 눈높이 맞추고자 합니다
어떤 질책도 서슴치 말고 들려 주십시오”
최양업 신부님. 이제 신부님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납니다. 그 동안 신발끈을 동여매고 조이면서 보낸 세월이 있었습니다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부족함으로 어깨가 무겁고, 두려움으로 가슴이 떨립니다.
소설의 예고가 나가자, 무슨 놈의 소설 제목이 ‘아, 최양업’이냐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1부는 ‘신부의 어머니’ 제2부는 ‘십자가의 길’ 제3부는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라는 소제목을 붙일 예정이지만 전체 이야기에는 ‘아, 최양업’이라고 당신의 실명을 그냥 쓰기로 합니다. 제목에 당신의 이름을 그대로 얹음으로써, 신문을 펼쳐든 누군가가 그 제목을 훑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해서 당신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제가 해야 할 임무의 하나는 이루어진다고ㅋ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왜 걱정이 없겠습니까. 혹시나 ‘최양업, 아이구 그 재미없는 소설?’하는 독자가 생겨남으로써 당신의 이름만 보아도 피해가는 분들이 있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또 생각 밖의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신부님. 어제는 당신의 어머니를 찾아 서울 용산의 ‘당고개 성지’에 갔었습니다. 용산 전자상가 뒤편의 그 빈한한 동네, 좁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는데, 어느새 거기도 재개발이 진행되어 집이란 집은 모두 중장비가 헐어내고 있었습니다. 무너져 가는 집들을 내려다보며 덩그랗게 남아 있는 당고개 성지는 왜 그렇게 쓸쓸하던지요. 늘 여자 교우들이 와서 기도를 바치던 따뜻한 곳이었는데, 이제 이 성지마저 중장비의 바퀴에 깔려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닌지, 심란했습니다.
제1부 ‘신부의 어머니’는 당고개에서 장중한 막을 내릴 것입니다. 소설 ‘아, 최양업’의 제1부는 그렇게 해서 유학길을 떠나는 당신들의 손을 끌고 압록강을 넘어가는 성 정하상 바오로와 어린 자식들을 거지꼴로 세상에 남겨 놓으면서도 하느님께 맡기고 떠나는 당신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한 축을 이룰 것입니다.
청양 다래골, 무명 순교자의 줄무덤이 있는 야산에서 조금 내려오면 있는 그곳 집터도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주 깔끔하게 단장을 했으니까요. 십 여 마리의 염소가 뛰놀던 그곳에 돌담을 둘러치고 잔디를 심고 당신을 기립니다. 우물터도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산등성이에는 여전히 소나무가 푸르고, 봄을 맞은 들판은 벼들이 익어갈 가을을 기다리며 묵묵했습니다.
집터의 염소떼는 사라졌지만 옆집 개는 여전히 영악해서 으르렁거리며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댔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주 순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어린 최양업에게 주어 기르도록 하자. 감기라도 들어서 누워 있으면 옆에 와 같이 눕는 그런 강아지를.
당신이 폴짝폴짝 뛰어다녔을 논둑길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당신을 만났을까. 왜 그렇게 오래 당신의 이름에 얽매어 살았을까. 저는 당신의 이름 속에서 저 위대한 사도들의 모습을 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기나긴 전도여행을, 사비에르 성인의 여정을, 조선으로 조선으로 하는 열정 속에서 중국 대륙을 뚫고 오시다가 쓰러지는 조선교구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모습을 당신에게서 보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길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스러져갔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 포교지 밖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발길은 달리고 뛰고 있으나 얼굴은 무겁게 숙여집니다. 이는 나의 죄악과 빈곤과 허약 때문입니다. … 그러나 하느님의 풍부한 자비심에 희망을 갖고 하느님의 섭리에 나 전체를 맡깁니다. … 나의 빈약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만 주께 바라는 굳센 믿음으로 결코 실망하지는 않겠습니다. 원컨대 저 십자가의 능력이 내게 힘을 주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편지에 남긴 당신의 이 말씀 속에서, 신부님 저는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 소설의 세계는 이미 현실의 틀을 넘어선 지가 오래입니다. 공간적으로는 우주를 시간적으로는 차원을 넘나들며, 상상의 세계를 그려냅니다. 그런 시대에 저는 사실성이라는 터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든 실명소설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역사 위를 걸어간 삶을 그리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를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소설가로서의 어떤 야심도, 문학적 실험이나 새로운 형식의 추구도 저는 꿈꾸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당신을 통해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정성을 다하겠다는 진정성만이 당신을 향해 나아가는 제 손에 들린 제물입니다. 손쉬운 허구가 아니라 온몸을 땅바닥에 대고 꿈틀거리며 기어야 하는 뱀처럼 저 또한 몸을 던져 역사적 진실의 레일을 깔고 그 길을 가기로 합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마카오의 신학교로 갈 테고, 만주벌판을 훈춘까지 헤매며 당신과 함께 압록강을 바라볼 테고, 경상도 언양의 바위굴 속에 엎드려 기나긴 밤을 보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요. 그 이야기들로 저는 이 소설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갈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최승룡 신부님의 부름을 받고 ‘교회사연구소’로 찾아가 뵈었습니다. 놀랍게도 최신부님께서는 당신이 쓰신 친필 편지를 보여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최양업 신부 무덤 앞에만 가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이런 것도 봐야 무슨 상상력이 생기지 않겠냐고 웃으시면서.
어쩌면 그렇게 글씨를 반듯하게 쓰셨던지요. 그냥 당신의 체취가 느껴져 왔습니다. 생전에 이렇게 출중한 분을 뵐 수 있었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거기서 김대건 신부님이 옥중에서 쓴 편지도 보았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형제여. 어머니를 부탁하네’ 하는 그런 말이 들어 있는 편지에는 글자가 물기에 번진 듯 흐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이것이 최양업 신부의 눈물은 아닐까. 먼저 가는 친구의 편지를 보며 울지는 않았을까.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설정이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선친께서 사셨던 안양의 ‘수리산 성지’에는 ‘최경환 생가’라는 작은 경당이 생겼습니다. 거기 가서 오래 기도하며 걱정한 것은 ‘최경환’이라는 인물입니다. 장에 가서도 제일 나쁜 것, 못 먹을 거나 사오는 분. 그러면서 내가 안 팔아 주면 그 장사꾼은 무얼 먹고 사냐는 이런 분을 어떻게 ‘인간 최경환’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그 생각만하면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중국에서 부제로 활동하신 당신은 어쩌면 한국인 최초로 해외사목을 한 분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선각자로서의 당신, 편지 끝에 늘 18xx년이라고 서력(西曆)을 쓴 최초의 한국인으로서의 당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당신을 그려나갈 것입니다.
몇 년 전입니다. 시인인 친구의 어머니 장례식에 몇 명의 문인들이 모인 때였습니다. 옆에 앉았던 소설가 친구가 어디서 들었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천주교 소설 쓴다구?”
“생각은 있는데, 힘들어.”
“쓰지 마. 천주교 소설.”
의아해 하며 제가 물었습니다.
“왜?”
“망해. 천주교 소설 쓰면 망해. 아무도 안 읽어! 천주교 신자들 책 더럽게 안 읽어!”
친구의 말은 아주 단호했습니다. 망한답니다. 천주교 소설 쓰면 망하는데, 망하는 짓을 왜 하느냐는 질책이었습니다.
혼자 생각했습니다. 못 읽게 쓰니까, 안 읽겠지. 망하게 쓰니까, 망하겠지. 제 탓은 안 하고 왜 독자 탓을 하나 싶었습니다.
어제는 그런 마음을 추스르느라 서재 한쪽 벽에 써 붙였습니다. ‘이 길을 가고 또 가서 마침내 이르게 하소서. 그러나 하느님. 제가 망한들 어떻겠습니까.’
소설의 상상력이, 허구의 힘이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지는 저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만, 울며 불며 쓰겠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나오는 어떤 배신도 어떤 죽음도 어떤 사랑도 다 아름답게 쓰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기에 고증이나 사적(史的) 자료에 충실하고자 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이 읽어 가는데 장애가 될 요소는 과감하게 피해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무례하지만 소설의 눈높이를 성당 문턱에도 안 와 본 사람들에게, 저 많은 냉담자들에게 맞추려고 합니다. 그들이 읽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읽히지 않는 소설이 왜 있어야 하겠습니까.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쓴다 생각하시고, 어떤 질책도 조언도 서슴치 말고 들려주십시오. 작은 쪽지 하나라도 자료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저는 홀로 서 있습니다. 제가 기댈 언덕은 독자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
아, 주여. 길은 멀고, 아직 신발끈도 매지 못했는데 어느새 새벽입니다. 길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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