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자리가 없다
중산층화 가속, 없는 이들 교회서도 ‘눈칫밥’
높아만 가는 문턱…“교회, 서민들 편에 서라”
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속에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성찰과 고민을 요구한다. 가톨릭신문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실천을 위한 더 깊은 고민을 위해 시대의 징표를 탐색하는 기획을 ‘커버스토리’의 제하로 시도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기획특집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진지한 신앙과 삶을 모색하는 새 기획에 깊은 관심을 바란다. 그 첫 시도로, 복음적 가난을 살아갈 한국 천주교회의 소명을 성찰한다.
“천주교는 부자 종교인가 봐요.”
하루벌이 막노동을 한다는 한 신자가 대뜸 윽박지르듯 말한다. 아내도 식당 일을 거들지만 가족의 생계비로 한 달에 손에 쥐는 건 백 만원 남짓,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교무금 액수는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헌금도 남이 볼까 주먹에 숨겨 쥐고 떨군다.
“성당 가도 미사만 참여할뿐 사람들하고 아는 척도 별로 못해요. 성당에서 할 일도 별로 없구요. 돈이 없으니까 신앙생활도 어려워지네요.”
하느님 눈에 들었던 과부의 헌금이 이제는 한국 교회 안에서 부끄러움이 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설 자리가 교회 안에서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교회의 가난한 생활양식의 증거’를 보여주려는 서울대교구 선교본당, 무악동 선교본당 주임 박문수 신부가 “천주교회의 문턱 높이를 30cm”로 비유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성당과 사제의 높은 위상, 가난함에 대한 부끄러움 등이 각각 5cm 씩 해서 높아진 문턱은 가난한 이들이 넘어서긴 꽤 높다.
한때, 가난한 이들, 핍박 받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투신함으로써 사회적 양심의 최후 보루로서 자리매김됐고, 그 덕분에 고도성장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한국 천주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로 맺어진 교회가 아닐 수도 있다.
다소 과장일지 몰라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칫 “비싼 교회”를 넘어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라는 자포자기를 빚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은 교구 시노드 후속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서 “갈수록 중산층화 되어가는 우리 교구의 현실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교회가 멀어져 가는 상황”을 지적했다.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는 “교회의 중산층화는 이미 중산층이 돼 있는 이들이 천주교회를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며 “이는 곧 교회가 중산층에게 편안한 구조라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제들도 중산층 이상의 신자들을 선호한다”며 “이제 서민들은 다른 메시지를 찾아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회의 중산층화’는 각종 조사와 연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6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연구발표회에서 박문수 박사(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강사)는 “한국 교회가 중산층 교회로 굳어진 것이 갖는 의미”를 검토하고, 이러한 계층화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떨어뜨리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천교구 오경환 신부는 고소득 신자 가정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 “교회가 중산층에 몰려 있다는 증거”이고 “이러한 현상은 향후 20여년 동안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사제와 수도자의 가난하고 소박한 삶은 가난한 교회가 되는데 중요하다. 정추기경의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는 ‘가난’을 수없이 강조한다. “사제는 비록 가난을 공적으로 서약하지 않았을지라도 복음적인 가난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면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허영을 피하여야” 하고, “허세와 사치를 삼가”해야 한다. 수도자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지녀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누구보다 먼저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가난이 반드시 따라야 할 복음적 가치임을 선포하지만 정작 현실은 교회 자신의 말을 철저히 살아가지 못한다.
기사입력일 :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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