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적이며 본질적 선택
교회의 가난은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것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지향
‘교회의 역사’라는 연극을 상연하려 한다. 각본은 성부, 연출은 성자다. 배우들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로 다양하게 짜여 있다. 조명은 성령이, 무대 감독은 교회가 맡았다. 모두가 준비됐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아~하. 의상과 소품이 빠졌다. 연출 감독은 “이번 연극에 걸맞는 의상과 소품으로 청빈과 정결, 순명을 준비하라”고 무대 감독(교회)에 명령했다. 과연 한국 교회는 아름다운 의상과 소품을 가지고 교회 역사의 한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가. 교회에 있어서 가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가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말한다. 세상 이치를 비롯해 모든 것이 ‘공(空)’이기에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처 스스로가 해탈 후 첫 설법에서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그리스도교에선 소유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까. 예수는 결코 부자들을 당신 활동과 사업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 예수 주변에는 니고데모, 아리마테아의 요셉, 신심 깊은 여성들, 자캐오 등 ‘부자’들이 많았다. 어부였던 첫 교황 베드로도 자신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배로 고기를 잡았다(마르 4, 35~41). 구약성경에서도 빈곤은 하나의 극복해야 할 악(惡)이다(신명기 15, 4 참조).
하지만 예수는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 16~2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 19~31) 등이 그 예다.
예수는 더 나아가 지상재물에 초연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루카 14, 33; 12, 33~34). 예수는 또한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 24)라고 말한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에 따라 교회 스스로도 가난의 소중함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1891년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이 그 첫걸음. 이 회칙은 가난한 이의 곤경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고 사회의 변화를 요청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공식화시켰다. 또한 교황은 ‘이 세상의 재화는 원래부터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천명했다(42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겠다는 의지적 결단의 표현이었다.
이와 동시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화와 재물에 대해, 공유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재화는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사유물(私有物)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유물(共有物)로 보아야 하고, 자신에게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과 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사목헌장 69항 참조). 또한 “외적이고 물질적인 재화이든 정신적인 재능이든 하느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자기의 인격완성에 그것을 활용하고,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어머니와 교사 119항).
이같은 교회의 의지는 교회 스스로도 가난해 져야 한다는 반성으로 발전한다. 아시아의 주교들은 1974년 타이완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그들(가난한 이들)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바람이 무엇인지를 배워야하며, 소외와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구조와 환경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바람이 현실화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가난한 이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불의를 조장하는 이들이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가난의 이유는 교회 창립자이시며, 가난하게 사셨고,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으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는 프라도 사제회의 지향과 일치한다. 이와 관련해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는 자신의 책에서 “교회의 세계화 외침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복음인 가난을 찾고 가난을 실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교회는 기업의 일종일 뿐, 구원의 교회는 되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칼 라너는 자신의 저서 ‘교회의 미래상’에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교회를 무시하고 그리스도인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봉사해야 하며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인간 존엄성을 옹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가난한 이들은 단순히 결여되고 결핍되어 있고,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약속 받은 복음의 담당자들이다. 생각할 권리를 가졌으며, 해방시키는 하느님을 선포하기 위한 조건인 생활화한 신앙을 축적할 능력을 소유한 자들인 것이다.
교회는 매일 성당에서 복음을 읽고, 복음을 선포한다. 복음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루카 16, 12)
◎가난한 이들과 연대 ‘선교본당’
소공동체+빈민사목 도시본당 문제 해결‘복음적 가난’ 성찰
부의 소유가 교회와 신앙생활의 참여를 가르는 한 가지 요건으로 작용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복음적 가난을 강조하는 공동체의 이상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본당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이강서 신부)는 1998년 처음 선교본당을 시작했다. 선교본당은 사목자, 선교활동가가 임대주택 등 사목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과 생활하며 현실을 이해하고 현장을 파악해 활동을 전개하는 공동체이다.
위원회가 펴낸 책 ‘선교본당의 5년 평가와 전망’에도 “선교본당의 설립취지는 도시본당의 대형화에 따른 제반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소공동체 운동’과 빈민사목의 성과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라고 전했다. 더불어 “도시공소 사목체계를 사목자가 빈민지역에 상주하며 주민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본당의 상(像)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이라고 했다.
과연 선교본당은 본당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무악동 선교본당 주임 박문수 신부는 “일반본당이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선교본당이 생겨난 것은 맞지만 ‘대안’이라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본당은 준본당과 같은 다양한 본당 형태 중 하나라고 보면 되고, 주목해야할 것은 선교본당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교본당이 본당의 상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에 대한 성공여부는 선교본당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 소외계층 등 현대사회가 가진 한계들을 교회 즉, 일선본당이 풀어낼 수 있다면 선교본당의 역할도 거기서 끝나는 셈이다.
박문수 신부는 2006년 3월 지금은 폐간된 월간사목에서 “천주교회 문턱의 높이를 30cm라고 하자. 5cm는 땅값과 성당값이다. 5cm는 돈이 없어서 건립금을 내지 못하는 자기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5cm는 교리반 일정표이다. 남의 밑에서 일하고, 가정생활도 여유가 없는데 교리시간에 결석했기 때문에 잘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5cm는 신부님들의 높은 사회 위상이다. 5cm는 활동단체의 비싼 친목회비를 잘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며 5cm는 캠프나 문화행사의 비싼 행사비용이다”라고 했다.
선교본당은 존재 자체로 일반본당에게 많은 것을 일깨운다. 청빈서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적 가난’을 생각하게 하며, 자신을 성찰할 기회도 제공한다.
선교본당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연대’다. 빈민사목 관계자들은 빈민들만의 공동체가 되지 않기 위해, 인근 본당과의 연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본당이 ‘선교본당’이 되지 않더라도, 개인의 구원을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닌, 공동체를 통한 하느님 체험이라는 ‘공동체의 이상’은 지금도 실현가능하다.
기사입력일 :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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