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경로 제1, 2, 3차 전도여행 따라 터키,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4개국 순례
이상의 취지를 바탕으로 ‘바오로 로드를 가다’ 기획취재는 성 바오로 수도회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 바오로의 출생, 회심, 제1, 2, 3차 전도여행, 압송, 순교까지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도 바오로에 매료돼 수도회에 입회했다는 성 바오로 수도회 김동주 수사가 사부를 묵상하면서 바오로 로드를 걸을 예정이며 바오로 이야기와 지역 설명 등이 덧붙여진다. 순례 대상국가는 크게 터키,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등 4개국으로 나뉘며 5월 21일~6월 11일 취재 이후 약 6개월간 연재된다.
가톨릭신문은 바오로 해를 맞아 기획특집 ‘사도 바오로의 영성을 따라서’를 연재하며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로마 총본원, 성 바오로 수도회 로마 총본원, 성 바오로 딸 로마 총본원을 취재한 바 있다(2008년 1월 6일, 13일, 20일자 참조).
올 6월 28일부터 약 1년간 이어지는 바오로 해를 맞아 사도 바오로의 영성과 가톨릭신문의 의욕적인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순교한 곳’ 이탈리아
바오로는 61년 이른 봄 다시 배를 타고 시실리섬을 거쳐, 나폴리 북쪽에 자리한 항구 보디올리(지금의 포추올리)에 도착해 이레 동안 그곳 교우들의 환대를 받았다. 보디올리에서 로마까지는 아피아 국도를 따라갔는데 로마의 교우들이 압송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아피오 광장까지 또는 로마 남쪽으로 50Km 떨어진 트레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왔다고 한다.
학자들은 바오로가 네로 박해 때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형리가 사도 바오로의 목을 자르니까 머리가 세 번 튀었고, 세 번 튈 때마다 분수가 솟아났다는 트레 폰타네, 성 바오로 대성당, 감옥 등을 순례한다.
‘태어난 곳’ 터키
사도 바오로의 출생지로 태어난 타르소와 안티오키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트로아스, 바오로의 가장 활발한 무대였던 에페소 등을 순례한다.
특히 안티오키아는 사도 바오로가 떠난 전도여행의 거점이 됐던 곳이다.
또 사도 베드로가 안티오키아를 방문해 처음에는 이방인 신자들과 어울리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신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이방인 신자들을 멀리하는 것을 사도 바오로가 꾸짖은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안티오키아 사건’이라고 한다.
‘압송된 곳’ 몰타
‘바오로가 사방에서 유다교를 비방했을 뿐더러 이방인들을 성전 이스라엘 구역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유다인들의 비난에 따라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된다.
그 후 그는 로마로 압송되는데 시돈, 미라, 크레타섬 등 여러 곳에 정박했다. 당시 지중해 겨울 항해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바오로는 크레타섬에서 겨울을 나자고 했으나, 인솔 책임자인 로마군 백부장이 무리하게 항해를 강행하다가 결국 배가 파선되고 만다.
사람들은 겨우 몰타(사도행전에서 멜리데)섬에 상륙해 겨울철 석달을 났다. 고통스러운 압송의 길 도중, 파선돼 몰타 섬에 정박해있던 바오로 사도의 심중을 느껴본다.
‘네 개 교회 세운’ 그리스
성경상의 네아폴리스인 까발라와 필리피, 테살로니카, 코린토, 아테네 등을 순례한다. 바오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 오늘날의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 네 개의 교회를 세웠다. 필리피교회, 테살로니카 교회, 베로이아 교회를 창설하고 아테네로 건너간 바오로는 전도에서 실패,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코린토에서 무려 18개월간 머물며 큰 교회를 세웠는데 늘 그랬듯 이곳에서도 손수 생계비와 전도비를 벌었다. 로마에서 이곳으로 쫓겨 온 유다계 그리스도인 부부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만나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한편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전도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고/ 성 바오로 수도회 김동주 수사
“사부님, 이제 제가 갑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 34).
브라질에서 8년간 선교사로 머물다 돌아온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내게 과분한 소임이 주어졌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바오로 사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라는 명은 당황스럽고 막막한 일이었다.
사부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 그 길에서 은총으로 받은 묵상들을 독자들과 나눈다는 것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브라질 상 파울로 성모승천 가톨릭대학교에서 그저 어깨너머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것이 전부이고, 화려한 문체로 감동적인 글을 써 본 적도 없다.
우물쭈물 머뭇거릴 때, 수도회와 함께 이 기획을 공동주관하는 가톨릭신문사 기자가 물었다. “바오로 사도를 사랑하시지요?” 그 한 마디에 힘을 얻었다. 답답하고 막힌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랑하는 이의 길을 따라 걷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을까?
“내일의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라고 등을 두드려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며 이제 길을 떠나려 한다. 더 이상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내 교만을 탓할 일이다.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 모험을 떠난다.
왜일까? 왜 하필 바오로인가. 무려 2천년이 지난 지금, 그를 기억하고 그 길을 더듬어 찾아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오로 사도 만큼 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도 드물다. 길을 떠난 제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도행전,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여러 교회에 보낸 서간들을 읽다 보면 그의 엄청난 열정과 위대함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분은 과연 교회의, 그리고 바오로 수도회의 스승이고 모델이며 사부이다.
그분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있었을까? 어느 신학자는 바오로 사도야말로 예수님 다음으로 교회사에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분을 사부로 모시고 살아가는 내게 ‘바오로의 해’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이방인들의 땅에 복음을 선포하셨다. 여전히 선교의 땅인 한국교회가 특별히 그분의 도우심을 청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을 거슬러 하느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의 흔적은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사도께서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그 길을 따라 걸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분께서 이끄실 것이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를 통해 당신 뜻을 드러내시는 주님께서는 이 무명 평수사의 호기에 응답해주실 것을 믿는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번 순례가 정말 의미있고 복된 순간이 되길 바오로 가족 수도회 창립자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와 사도 바오로께 간청한다.
“사부님, 이제 제가 갑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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