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주일 특집]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 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평신도를 하느님의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한다. 그리스도의 햇볕과 바람, 비를 맞으며 그리스도를 위한 포도열매를 영글어가는 평신도들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김현기 주성대학 스포츠복지과 교수
평신도, 그리스도인
“선생님~ 장가 갔시유?” “안 갔으면 어떻게 하실라구유?”
기타를 맨 김현기(베드로·46·주성대학 스포츠복지과 교수)씨가 한 할머니에게 너스레를 떤다.
그는 교회 안에서 레크레이션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활력을 되찾아주고 일상에서 신앙과 웃음이 묻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청주교구 아버지학교, 황혼부부를 위한 행복웃음학교, 카나 혼인강좌 등 다양한 교구 내 행사를 맡아 하고 있다.
“무작정 웃는 것도 15분 이상 웃기 힘들죠. 성경말씀과 연결시켜서 일상 안에서 웃음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해요.”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아내를 따라 1988년 세례를 받고 성당을 찾았다. 청주 신봉동본당에 교적을 올리고 미사를 봉헌했다.
“당시 본당 주임이 장인산 신부님이셨어요. 제 직업을 들으시고 ‘행복하십니까?’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즐겁지 않습니다. 직업인걸요’했더니 그러면 빨리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그때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레크레이션을 한다는 것은 ‘행복’을 전하는 일인데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는 이제 신자들의 행복한 표정, 기쁨에 찬 동작들을 보면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했다. ‘아버지학교’에서 가르쳐 준 작은 게임을 통해 한 가족이 화기애애해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레크레이션이 가진 ‘힘’을 확인했다.
“교회는 하나의 생활공간이 돼야 합니다. 딱딱한 교리를 피하고 레크레이션 기법을 도입해 ‘놀이’ 자체가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죠. 평신도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즐거운 성당’이 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는 그것을 이뤄나가는 것은 평신도의 몫이자 힘에 달려있다고 했다.
“하느님은 정말 저를 ‘도구’로 쓰시나 봐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저 또한 변화되고 있어요.”
겸손해졌고, 삶이 행복해졌다. 주위를 돌아보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용기도 생겨났다.
한 포도나무의 가지들
“예전에는 성당에 꽃이 꽂혀있고, 청소가 되어있으면 좋기만 했어요. 그런데 이젠 ‘누군가는 꽃을 꽂아놓았고, 누군가는 걸레질을 했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꽃을 꽂는 누군가가 이제는 그가 됐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 한 부분을 차지하는 ‘즐거움’이다. 봉사를 통해 자신의 삶도 풍성해졌다.
그는 집에서 ‘스마일 라인’을 만들어 가족과 ‘웃음연습’을 한다. 선을 그어 넘어갈 때마다 한번씩 웃는 것이다. 막내아들은 웃음보안관을 자청해 가족들이 넘어가며 웃지 않으면 500원씩 벌금을 받는다.
“큰 아들놈이 나이를 먹으면서 잘 안 웃어요. 2만원을 뜯겼죠. 그런데 요즘 동생이 벌금을 계속 받으니까 한 번씩 선을 넘으면서 ‘픽’하고 웃어요.”
그의 이런 아이디어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교회 내에, 가정 내에 퍼져가고 있다. 작은 평신도의 힘은 이웃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행복은 다른 것이 없어요. 좋은 생각, 말, 실천, 감사죠. ‘평신도’로서 봉사하며 나와 주위에게 웃음을 주는 것. 제가 받은 가장 큰 소명이자 축복입니다.”
■서울 경찰사목위 유치장사목 대표봉사자 한승희씨
세상에 나가 열매를 맺도록 내가 너희를 내세웠다
유치장이라는 낯선 환경에서도 막힘없이 말이 술술 나온다.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듣는 사람이 있기에 힘이 난다.
한승희(안나66·서울 화곡6동본당)씨는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위원장 강혁준 신부) 유치장사목 대표봉사자다.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만 6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유치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일반인이 서울 시내 31곳의 경찰서와 유치장을 모두 방문한 경우는 드문 일이지만 한씨는 다르다. 필요로 하는 곳은 지역불문하고 찾아간다.
한씨는 사실 유치장사목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본당에서 묵묵히 봉사를 해왔다. 레지오 활동도 열심이어서 양로원, 공부방 봉사 등 안 해본 봉사가 없을 정도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못했던 그도 여러 봉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수다쟁이가 됐다.
“그동안 본당에서 해 온 봉사활동은 주님께서 저를 유치장 사목 봉사자로 쓰시기 위해 마련해 놓은 발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님 포도원의 일꾼들
한씨는 ‘유치인들을 위한 심성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는 어김없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타종교 선교사들처럼 종교적인 말로 접근하지 않는다. 사회로부터 환경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유치인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표현예술심리상담사라는 자격증을 딴 것도 타종교와의 차별화된 접근을 위해서다.
그는 유치장에 들어서자마자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는다. 흥분상태의 유치인들에게 안정을 주는 한 방법이다. 또 어머니처럼 다정한 목소리와 희망적 말로 그들에게 힘을 준다. 프로그램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잊지 않는다. 2남1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 평신도이기 때문에 유치인들도 격 없이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유치인들은 죄인이 아니에요. 단지 용의자일 뿐이죠. 우리들은 종교인으로 다가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라고 말하기보다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위로해 간접적으로 주님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해요.”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한씨의 노력으로 처음의 냉랭한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유치장사목 봉사활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10일이라는 기간 동안만 유치장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알리기란 쉽지가 않다. 가끔은 소란을 피우는 유치인들도 만나고 마음의 문을 꽉 닫아버린 이도 만난다. 봉사자들이 이들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인권위원회에서 종교 활동이 엄격하게 규제를 받고 있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도 그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유치인들로부터 오는 편지 덕분이다.
“감사하다고 천주교 교리를 시작했다는 내용의 편지들이 경신실로 자주 와요.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평신도 봉사자로서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보람을 보다 많은 평신도 분들이 함께 나눠가지면 좋겠어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언제나 씩씩하게 그리고 밝게 유치인들의 상처를 감싸 안는 그는 “언제까지나 말로써 행동으로 그들에게 하느님의 모상을 보여주고 싶다”며 평신도로서 하느님의 포도열매로서 영글어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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