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희생이 아니라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예기치 않은 밥차 고장에 발 동동…이주민 위해 음식 봉사
“이웃사랑은 작은 관심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 깨달아”
4월 27일 오전 7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서울 톨게이트 인근에서 5t‘밥차’가 멈춰선 것.
“두두두두, 푸르르…” 무슨 이유에서 인지 한번 시동 꺼진 엔진은 좀처럼 다시 힘을 받지 못했다.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회장 김응태, 지도 김용태 신부) 회원 20여 명은 발을 동동 굴렀다. 전북 이주사목센터(대표 송년홍 신부)가 주최하고, 전주교구 이주사목이 주관하는 ‘다문화 안에서 일치와 나눔 한마당 축제’에 봉사하기 위해 나선 길. 밥차가 없으면 행사에 참가하는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아이들, 그리고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점심을 굶게 된다. 300여 명이 참여하는 전북지역 대규모 세계 이민의 날 축제를 망치게 되는 셈이다.
일단 밥차 수리를 맡을 최소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봉사자들은 먼저 행사가 열리는 전주로 향하기로 했다. 밥차는 자동차 정비소 직원을 불러 고치기로 했지만, 휴일에 자동차 정비소가 문을 열지도 걱정이고, 정비사가 온다고 해도 과연 짧은 시간 안에 고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적어도 11시에는 전주교구청 행사장에 도착해야, 제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봉사자들은 전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기도를 바쳤다.
봉사자들이 전주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20분. 당초 9시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도중에 밥차 문제로 시간을 끈 탓에 늦었다. 오전 11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로 미사가 시작됐다. 봉사자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복음이 낭독될 때 까지 밥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을 주문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할 시간. 나눔의 묵상회 김응태 회장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잠시 후…. 봉사자들의 기도가 하늘에 통했다. 이병호 주교의 미사 강론이 시작될 즈음, 드디어 빨간 밥차가 교구청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불을 댕겨서 돼지두루치기를 만들고, 감자요리를 하고, 육개장을 끓였다. 오렌지와 바나나도 간식으로 챙겼다. 무거운 반찬 재료들을 옮기고, 식판을 씻고…. 평소 불편했던 허리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는 일. 이러저리 뛰어 다니다 보니 이내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 졌다. 300여 명을 위한 식사는 그렇게 30여 분 만에 끝났다.
봉사자들이 한숨 돌릴 무렵. “그릇이 모자라요.” “젓가락이 없어요.” “물이 없어요.”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진다. 식사 준비에 정신없이 매달리다 보니 정작 필요한 것들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또 외국인들 식사만 생각하다 보니, 이병호 주교와 교구청 사제들을 위한 식탁도 미리 챙기지 못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또 발생했다. 충분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밥이 모자랐다. 급히 밥차를 다시 가동해 밥을 지었다.
오후 2시. 식사시간이 끝나고 축제가 시작됐다. 한숨 돌린 봉사자들이 그제야 수저를 든다.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무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행복해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최근 나눔의 묵상회 90기 2박3일 교육을 수료하고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 나눔의 묵상회 교육 수료 후 첫 봉사에 나섰다. 그 첫 봉사 땀의 소감도 각양각색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봉사가 희생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봉사의 행복을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이웃사랑은 돈이 아니라 작은 관심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숲정이 성지를 들렀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 세상이 어둑어둑해 진다.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휴일 나들이를 갔다가 귀경하는 정체가 심했다. 자가용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탄 25인승 버스는 버스 전용차로로 싱싱 달렸다.
■ 23년째 활동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는
음지서 묵묵히 일하는 ‘나눔 프로그램’
‘나눔의 묵상회’가 뭐야?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나눔의 묵상회’가 어떤 단체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지난 25년 가까이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그렇게 묵묵히 음지에서 활동해온 탓이다.
토종 혹은 한국형 빈첸시오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 서울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지시로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가 1986년 만든 ‘토착 나눔 실천 프로그램’이다. 2008년 5월 현재 90기 교육까지 수료, 총 38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서울대교구 차원의 단체로 머물렀지만, 최근 들어 안동, 전주교구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주관하는 2박3일 피정을 수료해야한다. 피정은 분기별로 한 번씩 갖지만, 본당 및 교회내 기관에서 단체로 신청할 경우 별도의 특별 피정을 마련하기도 한다.
나눔의 묵상회 정신은 나눔을 생활화하고 사랑과 봉사를 그리스도 신앙인의 삶 안에서 구체화하자는 것. 구호와 이념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실천하는 봉사를 통해 행복한 신앙인의 삶을 열어가자는 취지다.
나눔의 묵상회 회원들의 활동은 노숙자 무료급식, 복지시설 방문 봉사, 집수리 봉사, 홀몸 노인 수발 등 최근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회원 각자가 가진 탈렌트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특히 태풍 피해나 폭설, 수해 시에는 전국 어디든지 즉시 달려가 교회의 이름으로 활발한 봉사를 해오고 있다. 지난해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에도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한달동안 머물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김응태 회장은 “봉사의 행복은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체험할 수 있다”며 “나눔의 묵상회를 통해 교회의 나눔 문화가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나눔의 묵상회 교육 및 참여 문의 02-727-2547
사진설명
▶서울 ‘나눔의 묵상회’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전북 이주사목센터가 주최한 ‘다문화 안에서 일치와 나눔 한마당 축제’에서 이주민들에게 식사를 나눠주고 있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전북 이주사목센터가 주최한 ‘다문화 안에서 일치와 나눔 한마당 축제’에서 음식 봉사를 한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회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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