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현존에 나 자신 온전히 맡겨라
주님 알고자 성경 묵상·영적 독서·성체 조배 열심
마음 열고 ‘거룩한 독서’‘관상’ 통해 하느님 체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어서 기도라면 교리 시간에 배운 가톨릭 기도서의 기초적 기도들과 로사리오 기도가 전부였다. 때로는 나는 이런 염경기도를 통해 정서적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시기의 기도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기도가 아닌 나 자신의 의지에 중심을 둔 기도였다.
서울 대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기도에 대한 이해는 조금 달라졌다.
1학년 시절, 신학교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고 성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감도 느꼈다. 신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그 어디서도 하느님을 쉽게 인식하고 만남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동안 신학교에서의 나의 생활은 하느님과 아무런 연관성도 가지지 못했다. 공부도 기도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운동도, 심지어는 잠자는 시간 조차도 그랬다.
하지만 신학교 생활의 위기는 나에게 오히려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자극이 됐고, 이러한 자극은 기도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하느님 은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부님들은 개인 면담 등을 통해 나에게 성경 묵상과 영적 독서, 성체 조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이후 나는 공식적 기도 시간에는 성경을 읽고, 자유 시간에는 영적 독서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하루 한번 이상은 하느님 현존 앞에 머물러 있기 위해 성당을 반드시 찾았다. 그 결과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네 번 통독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묵상 체험과 기도 체험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기도의 총체적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도에 관해 읽은 일부 책들과 피정 등을 통해 나는 어렴풋이 기도와 관상에 대해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제가 된 이후에도 나는 거룩한 독서를 위해 거의 매일 1시간 동안 성경과 영성 서적들을 읽었다. 거룩한 독서가 습관이 됐고, 그 속에서 맛스러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외심(awe)이 기도의 첫 출발점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거룩한 독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가져다 주었다.
또 묵상의 결과로 나는 내 정신을 통한 기도를 훈련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기는 했지만 나는 자주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슬픔, 희망 그리고 사랑과 같은 느낌들을 가지곤 했다.
또한 기도에 머물러 있는(abiding) 동안,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거나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삶 안에서의 하느님의 은총과 뜻을 깨달으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나 자신을 더욱 온전히 던짐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야 한다는 영감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도 훈련은 나에게 많은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보다 더 커다란 열망을 가질 수 있었고 내 자신의 삶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동기도 됐다.
이처럼 나는 묵상과 거룩한 독서에는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관상이었다. 관상은 내가 사제가 된 후 신학교에서 후배들에게 영성에 대해 가르칠 때 조차도 나를 혼란에 빠트리곤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 1년 동안 난 관상의 원리를 깨닫기 위해, 그리고 관상의 상태를 체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러한 훈련을 위해 나는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 교회 박사들이 쓴 관상에 관한 서적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때로는 하느님 관상에 대한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신학교 뒷산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상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 역사상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관상하고 그 관상 안에서 오는 충만함을 맛보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은총이 주어지지 않았다. 명색이 신학교 영성지도 신부였는데도 말이다.
이는 내가 영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뜻밖의 은총이 미국에서 찾아왔다. 아드리안 반 카암 신부의 형성적 영성을 만나면서 나는 거룩한 독서 그리고 중심을 향하는 기도(centering prayer)와 관련해 관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거룩한 독서와 관상을 통해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해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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