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된 그릇된 신앙형태 극복 시급
공동체 결속력 약화되고 개인주의 신앙 두드러져
심리적·영성적 오류 해소할 깊이 있는 연구 필요
가톨릭신문사가 창간 80주년을 맞아 실시한 신자 의식 조사 보고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은 그 조사결과를 크게 8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함의는 공동체성의 약화, 신자 집단의 양극화 현상, 교회생활에 참여하는 열의와 정도의 감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 마디로 제도교회로서의 그리스도교 교회에 속한 신자들의 탈제도적 종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탈제도적 종교성의 강화
이 조사는 매 10년마다 실시, 지금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이뤄짐에 따라 추세조사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이번 조사의 결과는 이전 10년간의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종교의식의 두드러지는 변화를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특별히 ‘영성생활과 신앙공동체 생활’ 영역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영역에서는 모두 7개의 분야로 나눠 설문조사가 이뤄졌는데, 신자들의 공동체 소속감, 공동체 의식, 자원동원 정도, 영성생활의 정도 등으로 나눠진다.
먼저 공동체 의식에서 응답자들은 2차 조사 때와 비교해 현저하게 낮아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신자로서의 자부심도 약화됐다. 교회 활동에 대한 인지도는 단순한 관심 정도를 넘어 소속감과 동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분석되는데, 총 10가지 활동 중에서 모든 항목에서 적극적 인지 비율은 낮아졌다.
추세조사의 성격을 지니는 이 조사의 결과를 포함해 각종 교회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교회는 우선 고도성장의 양적 팽창이 가져온 그늘에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천주교회는 70년대와 80년대 엄청난 양적 성장 속에서 상대적으로 신앙생활의 허점이 노정돼 왔다는 것이다.
양적으로는 지속적으로 급속한 성장 추세를 유지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소속감은 약화되고, 공동체 의식, 종교성과 신앙에 대한 투신의 정도가 모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추세 조사의 결과라는 점을 볼 때, 이미 20년 이상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경향은 이른바 탈제도적 종교성의 증가로 해석된다.
비록 세례로 획득한 소속은 유지하면서도 종교적인 욕구를 제도 안에서 충족하지 않고, 임의로 취사선택하는 자의적 종교성 안에서 추구하고, 종교간의 경계 역시 임의적으로 허무는 이른바 ‘신흥영성’의 속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자들의 신앙 유형이 전반적으로 개인주의화, 사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10년 전의 제2차 조사에서 이러한 경향이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3차 조사에서는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신자재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증가, 교회 미디어 활용도 증가, 그리고 만족도의 증가 등 일견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요인들이 공동체에 대한 결속력과 신앙 투신도의 증가와 병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이러한 경향은 한국 천주교회의 신자들이 제도교회에 대한 충성도나 소속감, 공동체에 대한 투신은 약화된 반면,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욕구의 충족에는 적극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이러한 양상은 결국 탈제도적 종교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흥영성운동의 영향
지난 수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는 이른바 신영성, 신흥영성, 유사영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건전하지 못한 영적 운동과 흐름에 대한 사목적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한 명확하고 광범위하고 결정적인 사목 대책들이 수립되지 못한 채 일부 사목자들의 문제제기만으로 끝난 감이 있지만, 그 위험성과 폐해는 여전히 한국교회의 일선 사목 현장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의 이에 대한 우려는 90년대 말부터 제기됐다. 1997년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이라는 제목의 소책자가 발간된 이래 이 문제는 사목적인 논란의 대상이 됨으로써 주교회의 차원의 몇 가지 후속 자료집이 나왔고, 일부 교구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를 담은 사목 서한이 발표되기도 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발간한 이 소책자는 신흥종교운동, 시한부 종말론, 사적게시와 함께 뉴에이지운동, 건강이나 치별과 관련된 비술(秘術)이나 영술(靈術) 운동, 그리고 각종 예언술, 풍수지리, 전생, 환생 신드롬 등을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유형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책자의 후속자료집은 이러한 유형들을 더욱 구체화해 뉴에이지운동, 정신세계운동, 그리고 기수련 운동 등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신영성운동’으로 간주하고 이들이 그리스도 신앙과 충돌하는 측면들을 우려하고 경계했다. 이러한 새로운 영성적 운동들은 이미 서구교회에서는 80년대부터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경계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교회가 공적인 차원에서 이같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시점에서는 이미 이러한 불건전한 영성적 경향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신앙적 정체성에 투철하지 못한 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운동과 경향들에 쉽사리 빠져드는 경향을 나타냄에 따라 각별한 경계와 교육적 노력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심각하게 제기됐다. 이러한 새로운 영성운동의 위험성은 사실, 두드러지게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탈제도적 종교성, 보이지 않는 종교의 확산으로 간주되고, 특히 종교의 외피를 쓰지 않고,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종교적 요소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으며, 기성 종교의 구성원들까지 그 수요층으로 삼는다는 면에서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년간에 걸친 교회내의 경각심에 대한 주의와 우려 표명으로 사목자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실태는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유사영성, 신흥영성 문제는 보다 주도면밀하고 정확한 실태 조사와 대응 방안의 모색이 요구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탈제도적 종교성이 지니는 심각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와 대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제도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제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며, 복음의 진리와 교회 및 신앙생활이 유지되는 성사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결속력, 교회의 공적 신앙생활에 대한 고려와 존중을 잃는다면, 자칫 개인화된 그릇된 신앙형태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인들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결코 해결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교회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현대인들의 종교적 심성, 사회적 조건과 배경, 환경 등에 조화를 이루며, 현대인들의 영적인 갈망에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는 깊은 모색이 필요한 과제이다.
미래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전망하면서, 올바른 사목적 대안을 찾는데 있어서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별히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채, 결정적인 사목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신흥영성운동들에 대한 식별과 신자들의 심리적, 영성적 오류를 해소해줄 수 있는 깊이 있는 연구가 요망된다.
사진설명
▶한국교회가 현대인들의 영적인 갈망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모색이 절실하다. 수원교구 야탑동 성마르코본당 소공동체 모임 모습.
▶신자들의 심리적, 영성적 오류를 해소해줄 깊이 있는 연구가 요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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