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으리”
“박경리 선생님은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가지고 성실히 노력하신 분입니다. 자연을 노래하고 인간을 사랑했던 선생의 작품들은 우리 인간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하느님께 가는 길을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5월 7일 오전 10시 서울 아산병원 고 박경리(테레사 1926~2008) 선생의 빈소. 위령미사를 집전하던 정의채 몬시뇰이 고인을 ‘새를 좋아하고 생명을 사랑한 프란치스코 성인 같은 분’이란 말로 기리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정몬시뇰과 박홍 신부(서강대학교 이사장)가 공동 집전한 이날 위령미사에는 고인의 외동딸 김영주(소화 테레사)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프란치스코) 시인 등 유가족들을 비롯해 장례위원장인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씨, 소설가 오정희(실비아)씨 등 신자 문인 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정몬시뇰은 이날 고인과 40여 년 전부터 맺어온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1960년대였어요. 박경리 선생이 ‘가톨릭신문’에 쓴 글을 보고 너무 좋아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런데 ‘요즘 죽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 후 박씨는 정몬시뇰의 도움을 받아 교리공부를 시작했고, 1967년 세례를 받았다. 신앙인으로 거듭난 박경리 선생은 본지 1967년 10월 8일자(제588호)부터 1968년 2월 11일자(제605호)에 ‘눈먼실솔’이란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정몬시뇰은 장편소설 ‘토지’가 탄생할 당시의 상황도 회고했다. “1967년쯤 어느 날인가, 박선생이 ‘내가 큰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때만 해도 그것이 26년 동안 집필되며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 된 ‘토지’에 대한 구상인지 몰랐어요.”
정몬시뇰은 지난 달 박씨가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진 뒤에도 박홍 신부와 병원을 찾아 병자성사를 베풀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7월 폐에서 종양이 발견돼 요양을 해왔다. 지난달 뇌졸중으로 반신 마비 증세를 보여 병원 중환자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5월 5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8일 문학인장으로 치러졌으며,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지낸 후 9일 고향인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양지농원 묘역에 안장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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