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주님
“모든 아침은 부활입니다.”
부활 같은 아침을 터키에서 맞이한다. 오늘 순례할 곳은 에페소. 요한 묵시록 일곱 교회 중 ‘첫사랑’을 잃었다고 야단을 맞은 교회다.
에페소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렸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 3~5)
첫사랑. 처음에 지녔던 사랑만큼 간절한 사랑이 있을까. 이번 바오로 로드를 걷기로 결심한 이유 또한 ‘첫사랑’이었다. 사부를 따라 길을 걸으며 하느님께 고백한 첫사랑을 찾기 위한 순례였던 것이다.
수도생활 초기 양성기, 나는 성인이 되겠다며 당찬 꿈을 꿨었다. 거룩하고 위대한 성인이 되겠다는, 그래서 열심히 살아 보겠다는 어린 수도자의 야무진 포부. 내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참으로 부끄럽다. 1992년 청원기 때였던가. 모든 일상을 거룩히 보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잠꼬대로 성가를 부르는 바람에 동료 형제가 벌떡 일어나 성당으로 가던 일도 있었다.
열정을 다해 그분께 기도했던 날들, 성무일도 찬미가를 노래하며 기뻐 눈물 흘렸던 날들.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수도자의 3대 서원에 맞춰 살기 위해 애썼던 그 지난날들. 하지만 지금 나는 달라졌다.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내 마음 안에는 수만 가지 인간적인 잡동사니가 가득 차있다.
나의 사부, 바오로 사도는 어떠하셨을까. 위대한 성인이면서도 나약했던 인간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계셨을 게다. 불같은 성격으로 인한 인간적 실수, 고집. 그러나 그분에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으셨다. 한평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 한분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파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고 ‘하느님의 피조물이구나’라며 무릎을 치고, 수도원에서 아침잠을 깨우는 뻐꾸기와 참새소리에 감사했었는데….
첫사랑을 안고 시작하는 수도자의 하루는 다른 이의 눈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내게는 거룩했다.
수도자라면 사도직이 ‘일’이 될 때의 괴리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첫사랑을 잃은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직장인과 같은 ‘일’일 뿐이다.
도서선교를 하고 있는 성 바오로회 수도자들은 매주 신심서적을 신자들에게 팔고 있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고, 봉고차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생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 그저 영업사원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힘들지만 첫사랑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도서선교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쁜 사명’이다. 우리들의 사부 바오로 또한 부르튼 발을 부여잡고 천막장사를 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러 다니지 않았던가.
여러분들은 첫영성체의 기쁜 마음 그대로 영성체를 모시고 있는가 묻고 싶다. 주일마다 의무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영성체를 모시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도 ‘첫사랑’을 잃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그대. 세상 끝까지 나를 믿어주는 그대. 내 몸 하나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대. 그대의 이름은 ‘주님’이시다.
“주님, 당신께 대한 제 첫사랑을 변치 않게 하소서.”
‘첫사랑’ 잃지 않기를 기도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사도 바오로와 에페소
제3차 전도여행때 2년 넘게 머물며 선교
요한묵시록 7대 교회 중 하나인 에페소는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전도여행 때 오랫동안 전도한 도시이기도 하다.
53년경 바오로는 제3차 전도여행(53~58년경)을 떠나 우선 터키 중부 갈라티아 지방 교회들과 그 남쪽 프리기아 지방 교회들(데르베, 리스트라, 이코니온,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을 돌아보고 나서 에페소로 내려가 무려 27개월 가까이 전도했다.
에페소에서는 ‘문이 활짝 열렸다’고 바오로 자신이 말할 만큼 전도가 잘 됐다. 에페소에는 옛 시내와 아야솔루크 요새 중간 지점에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혀 아시아에서 순례객들이 모여들었다. 에페소 은장이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상 모형을 만들어 순례객들에게 팔아 수입을 올렸는데, 바오로의 전도로 수입이 줄자 시민들을 선동해 바오로 일행을 노천극장으로 끌고 가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사도 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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