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과 기도로 빚은 ‘생명의 양식’
영성체 시간. 한 꼬마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성체를 영하러 나가는 엄마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자신이 받은 것은 사탕 한알.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맛이 어때요?”
“신부님께서 그거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건 어디서 사왔어요? 나도 사먹으면 안되요?”
그러고보니 어른들도 제병(성체)과 미사주(성혈)에 대해 궁금해지곤 한다.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빵과 포도주. 예수님이 사시던 2천여 년 전 시대에 누구나 먹었던 가장 흔한 음식이었다. 최후의 만찬 때도 일반 가정에서 먹는 보통 음식을 가져와 예물로 바쳤고, 이를 성찬예식에 사용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빵 대신 다른 것들을 미사예물로 봉헌했다. 신자수가 많아지면서 빵을 미리 나누어 두기도 해야 했다. 따라서 성찬용 빵을 작게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이 동전 형태의 제병은 8~9세기쯤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르멜수녀회에서 우리밀로 만든 제병
교회법은 ‘제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순전히 밀로만 만들고’ ‘포도주는 깨끗하고 부패하지 않은 포도열매로 만들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제병은 대부분 관상수도회인 가르멜수녀회에서 구워 공급한다. 전국 각 본당들은 인근 수녀원을 연결해 주문해 쓴다. 아무런 첨가제가 들어있지 않아 한달 혹은 두달 주기로 쓸만큼의 양을 조절해 주문한다고.
제병의 재료는 우리밀이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된 1990년 초부터 수입밀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용과 제작과정의 어려움은 몇배나 더 크지만, 수녀회측에서는 우리밀로 제병을 만드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한국교회 공식 미사주 ‘마주앙’
미사주는 국산 최고급 포도주인 ‘마주앙’이다. (주)두산주류BG는 1977년부터 한국교회 공식 미사주를 공급해왔다. 이전에는 왜관수도원 포도주와 수입포도주를 사용했었다고.
국내 와인 개발의 원조인 이순주(테오도로, 당시 동양맥주 와인개발담당)씨는 미사주 개발의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술을 빚어 봉헌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미사주를 빚기 시작했다.
미사주는 순수해야 하기 때문에 품종 선정에서부터 재배 수확 발효 숙성 여과 등 전 과정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숙성과정도 일반 포도주처럼 1년이 아닌 2년간 지하 저장탱크에서 진행된다.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 포도주 담그기 책임자였던 길아돌프 수사는 처음 생산할 때부터 두산공장에 직접 가서 함께 도왔었다. 지금까지도 전체 제조과정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관리감독한다. (주)두산 또한 첫 마음을 이어 지금까지도 미사주로 이익을 남기지 않으며, 미사주 제조에 긍지를 갖고 있다.
미사주용 청포도는 경북 의성에 위치한 계약재배농가에서 최고 품질의 열매를 독점 관리 생산한다. 이렇게 수확한 포도는 모두 미사주에만 이용한다. 또 해마다 포도를 미사주용으로 봉헌하는 축복식도 거행한다. 적미사주용 포도는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MBA 품종을 쓴다.
미사주로 사용하는 포도주 색에 대한 제한은 없다. 보통 적색 포도주를 많이 사용했지만, 16세기 이후 성작수건을 사용하면서 백포도주가 널리 활용됐다고.
미사주는 보통 각 교구청을 통해 성당마다 보급된다. 한해 한국교회에서 소비하는 양은 20만 병 가량 되는데, 최근에는 적포도주 생산량이 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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