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병사들의 미소는 행복입니다”
본당 재건축 때 군인신자들 발벗고 나선 계기
신자들 감사의 뜻 담아 사병들 위한 식당 마련
매주 150여 명 식당 찾고 한해 20명 세례 받아
“음…. 오늘은 자장면이네.”
5월 18일 일요일 오전, 휴전선 접경 지역에 자리한 의정부교구 연천성당. 성당으로 들어서던 군인들 가운데 한 병사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내놓은 말에 성당 마당에선 이내 웅성임이 번져나간다. “이야, 정말 그런데. 하여튼 귀신이야 귀신.”
오늘 따라 미사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초연한 척 전례문을 따라 외는 병사들 가운데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병사도 적지 않다.
미사를 마치자마자 병사들의 바쁜 발걸음이 향한 곳은 성당 한켠에 세워진 식당. 벌써 식당 앞은 늘어선 병사들로 그득하다.
“오늘은 자장면하고 탕수육이니까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도록 해요.”
순간 “야!”하는 소리 죽인 탄성이 곳곳에서 터진다. 자장면을 받아 식탁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손을 드는 병사들이 눈에 띈다. 그러자 익숙한 듯 봉사자들이 자장면 그릇을 들고 병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여기 두 그릇 더 주세요!” “여기도요.”
병사들에게 자장면 그릇을 건네는 봉사자들의 얼굴에서는 뿌듯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연천성당에서 매 주일마다 재연되는 이런 모습은 본당이 설립된 지난 1995년부터 14년째 꼬박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어서 아는 이들 사이에선 조그만 기적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적상 신자라고 해야 300명 남짓한 조그만 본당, 그것도 젊은이라곤 찾아보기 쉽지 않은 곳에서 매주 평균 100명이 넘는 병사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군본당도 아닌 민간본당에서 이어져오고 있는 군인들과의 끈끈한 인연은 조그만 나눔에서 비롯됐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새 성당 건립사업이 본격화되자 공소에 나오던 군인신자들이 하나둘 일손을 보태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성당 인근의 몇몇 군부대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신자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나눔의 샘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성당 짓는 일에 자원한 군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비닐하우스로 간이식당을 짓고 음식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첫 나눔은 국수를 끓여 나눠주는 것으로 소박하게 시작됐다. 열악한 재정 형편에 그마저도 걱정할 날이 적지 않았지만 한 번 이어진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걱정할 때면 누군가가 채워주고 생각지도 않던 후원자가 나타나기도 하면서 10년 넘게 이어온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매주 연천성당을 찾는 군인들은 인근 포병부대와 전차대대 등 6개 부대에서 150여 명에 육박한다. 이들에 대한 한결같은 신자들의 마음이 이어지면서 본당에서는 지난 2006년 군인분과까지 만들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나눔에 나서고 있다. 질그릇처럼 소박하지만 속 깊은 마음씀씀이 때문이었을까, 연천본당에서는 매년 20명이 넘는 병사들이 신자들의 따뜻함에 이끌려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있다.
군인분과를 이끌고 있는 조시몬(52)씨는 “성당에서 위안을 얻은 병사들의 부모가 편지 등으로 감사의 뜻을 보내올 때 보람을 느낀다”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하고 값비싼 그 무엇이 아니라 진실된 나눔임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면서 교구 내 몇몇 본당과 서울대교구 관할 본당 등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봉사를 나오면서 연천본당 신자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다. 나눔이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면서 병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당장 봉사자들이 준비해오는 메뉴가 카레라이스 돈가스 비빔밥 탕수육 등으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봉사를 나온 이들은 의정부교구 대화동본당 신자들. 레지오 단원들과 선교축구단 단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봉사팀 일원으로 매달 셋째 주 남편과 함께 연천성당을 찾고 있는 강정자(율리아나·60)씨는 “병사들이 자식 같아 병사들이 좋아하는 것에 늘 눈과 손길이 간다”면서 “봉사가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당 주임 전숭규 신부는 “‘아직도 음식 나누기를 하고 계시냐’고 물어오는 전역 군인들이 있을 정도로 나눔의 힘이 뿌리 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서 “마음이 담긴 나눔을 통한 사랑 체험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매주 연천성당을 찾는 군인들은 6개 부대 150여명, 신자들은 2006년 군인분과까지 만들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에는 타 본당에서도 봉사를 나오면서 병사들이 덩달아 신이 났다. 봉사자들이 준비해오는 메뉴가 카레라이스, 돈가스, 비빔밥, 탕수육 등으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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