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뒷모습”
죽음 앞두고 인간적 고뇌에 싸인 예수의 뒷모습 표현
베네치아 회화 특유 색채, 빛으로 환상적인 노을 그려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이기에 기도는 더욱 간절해 보인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날 밤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고난을 받으신 후 죽게 되심을, 또한 사흘 후 부활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드리는 이 기도는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이다.
예수님 역시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러하실진데 세상의 그 어떤 인간이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인가? 하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셨듯이, 우리 인간 역시 세상의 어려움을 맡기고 기도 드릴 분은 주님 한 분 뿐이심을 깨우치게 해주는 기도이다.
그러나 또한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절박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베드로를 비롯한 사랑하는 세 제자는 그 잠시를 참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언덕에 기대어 잠든 이, 쪼그리고 조는 이, 아예 벌렁 누워 쿨쿨 잠이 든 이. 길 건너편에서는 예수님을 체포할 병정들이 떼지어 몰려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예수님이 잠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주일날 드리는 미사도 한 시간이다. 그런데 나 역시 이 한 시간을 온전히 깨어있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분심과 산만함, 그리고 졸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도가 절실한데도 말이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에게는 참 대견한 아들이 있다.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늘 새벽까지 공부하는 노력 덕분에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은 유학을 하고 있다. 유학을 시키려면 돈도 많이 돈도 많이 들겠지만 우리는 아직 유학송금이란 것을 해보질 않았다. 그 대학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으로 학비와 집세 생활비까지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공인 화학은 결국 실험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도무지 안 될 뿐더러 과연 적성에 맞는지, 그래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 지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오래 학교에 남아서 새벽까지 실험을 해보지만 실패의 연속이니 아이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고,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는데도 주일 날 나는 미사시간 한 시간을 참지 못해 졸고 있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한심할 수 있겠는가. 선생님이 곧 붙잡혀 돌아가실 목전에서 쿨쿨 잠이든 제자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게세마니 동산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는 나와 같은 어리석은 인간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하셨을 때 그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고 그 뜻을 따르고자 기도하셨다.
잠시를 못 참고 잠에 빠진 너무도 인간적인 제자들도 우리 보통사람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 그들은 이후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바쳤다. 인간은 잘못을 피하기는 어려우나 주님께 기도하고 용서를 청하면 받아주실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은 그래서 나약한 나에게 위안을 준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베네치아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2-1516)이다. 베네치아 회화는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는데 그 이유는 피렌체 화가들이 선으로 표현되는 데생을 중시했다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와 빛을 통해 그림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면 화면의 절반에는 이미 어둠이 밀려와 있고, 그 어둠 덕분에 저녁 햇살이 따사로이 덮고 있는 나머지 절반은 더욱 눈부셔 보인다. 꺼지기 전의 불꽃이 더욱 화려하듯이 황혼은 예수님이 기도하고 있는 게세마니 언덕을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회화에서 색채와 빛의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 우선했던 베네치아 화가였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따스한 빛의 근원은 저 멀리 서산너머 걸려있는 석양이다.
오늘날에야 이 정도 표현은 일도 아니겠지만 벨리니의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석양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남이 간 길을 따라가기는 쉬우나 오솔길이라도 처음으로 개척한 이는 위대한 법이다. 벨리니를 베네치아 회화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미술사학자들은 흔히 피렌체파와 베네치아파를 비교해 서양 미술의 중요한 두 유파를 언급하곤 한다. 지적이고 이상적인 피렌체파에 반해 베네치아파의 화풍은 보다 자유롭고 서정적이다. 무엇보다 색상의 탁월함과 빛의 묘사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조반니 벨리니는 이러한 이탈리아 베네치아파를 확립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최전성기를 일군 화가다. 때문에 그는 베네치아를 로마나 피렌체에 견줄만한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1483년 이후 그의 직위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공식화가였는데, 덕분에 그는 세금 면제 외에 많은 특혜를 받으며 지도적인 화가로 활동했다.
특히 그의 제자 중에는 조르조네, V.티치아노 등 우수한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스승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며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활동들을 펼쳤다.
벨리니의 초기 작품에서는 빛의 효과를 섬세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면모가 많이 나타났지만, 1487년 이후부터는 색채감이 풍부하고 미묘한 빛의 처리를 중시한 정서적인 화풍에 접근했다.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딱딱한 형태감을 부드럽게 하는, 밝고 빛나는 색채감각으로 그의 작품들은 더욱 빛난다. 또 화폭에 자연광을 담아냄으로써 자연스러운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연주의의 변화도 엿보게 한다.
부드러운 윤곽과 따뜻하고 밝은 색채를 구사하여 예술의 성숙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488년에 그린 베네치아의 산타마리아 디프라리성당의 제단화, 무라노섬의 피에트로대성당 제단화 등도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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