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과 피, 성체와 성혈 -
하필이면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이나 광복절 기념행사 중 “님들은 피를 흘려 이 땅을 지켰습니다.” 라든가 “온 몸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신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숭고한 일이나 조국을 위한 헌신, 또는 무엇인가 고귀한 일을 한 분을 두고 최상의 찬사를 논할 때 ‘몸과 피’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됩니다. 신앙을 끝까지 지킨 순교자들의 희생을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몸과 피를 자주 인용하는 까닭은, 사람이 자기 몸만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 옷, 집 등도 내 몸 소중한 줄 알기 때문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내 몸에 조그마한 상처나 피곤이 와도, 고통과 신경을 쓰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는 생명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든 두려움을 느낀다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죽음입니다. 때문에 몸과 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전체를 상징합니다. 몸과 피를 바쳐 희생하였다는 것은 그의 전 존재를 바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생활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그 크신 희생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큰 희생인 몸과 피를 바쳐 인간 사랑의 절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몸과 피를 바치신 사랑으로는 도무지 만족하실 수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먹는 음식으로 영원히 인간 곁에 남아 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체성사입니다.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음식으로 내어 주시어 우리와 하나로 남으시려는 끝없는 사랑의 절정이 성체성사인 것입니다. 때문에 최후만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전 예수님 사랑의 마음을 요한복음 사가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 1).
몸과 피로만이 아니라 그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시어 함께 하시겠다는 하느님 사랑의 성사가 성체성사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성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05항에는 성체성사에 대한 이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큰 희망에 대하여 성찬례보다 더 확실한 보증과 분명한 징표는 없다. 실로 이 신비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영생을 위한 약이요 죽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며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는 빵을 나누어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의 몸과 피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 54)
결국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까닭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신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몸과 피를 바쳐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동물의 몸과 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 제사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동물의 몸과 피가 인간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여 준다면,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과 피는 강력한 작용을 하여 인간을 더욱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히브 9~10장 참조)
진실로 교회의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신앙인들이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기적을 맛보았으며 삶의 희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체성사의 크나큰 은총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힘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제 자신도 오랜 세월 냉담의 길을 걸으며 인생을 허비하였던 한 형제님의 눈물어린 통회의 고백 뒤 감격의 영성체 장면을 보았으며, 정신지체 장애를 앓는 장애인이 미사 내내 딴청을 하다가도 영성체 때에는 경건하게 성체를 모시는 모습과 사경을 헤매다 성체를 영하고 평안히 임종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인식으로는 하느님의 깊은 신비인 성체성사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품안에서 사랑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하다면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기도를 바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여, 사람에게 생명주는 살아있는 빵이여, 제 영혼 당신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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